[탈수습기] 펜을 드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2025-03-24     오승리 기자
▲오승리 기자

펜을 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 화두를 마주할 때면 문득 한 소설을 떠올리게 된다.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주인공인 펄롱은 기자도 언론인도 아니다. 석탄을 나르고 손에 묻은 재를 털어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지극히 평범한 가장이다. 여느 때와 같이 석탄을 나르던 무렵, 그는 종교라는 허울을 쓰고 소녀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수녀원의 이중적 작태를 목도한다. 마을을 손아귀에 쥔 수녀원의 권력 앞에서 사람들은 그저 침묵을 지킬 뿐이다. 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펄롱 역시 이를 묵과해야 할지, 아니면 진실에 맞서야 할지를 두고 깊이 고민한다. 

그러한 펄롱의 모습은 수습 시절의 나를 상기시킨다. 처음 동대신문에 입사했을 때의 나는 그저 겁에 질린 존재였다. 스물셋의 나이에 ‘수습’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시작하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방패로 삼아 안도하기도 했다. 내가 써 내려간 글은 기사의 윤곽만 어렴풋이 흉내낼 뿐이었다. 문단마다 촘촘히 붙은 피드백과 끝없는 퇴고의 반복. 펄롱이 현실적인 이유로 침묵을 택했던 것처럼, 나 역시 두려움이란 알 속에 그저 머물러 있었다. 내가 쓴 글이 의미를 지닐 수 있을지 수없이 되뇌었다. 내 글이 곧 나의 자화상이 된다는 생각에 부족한 문장이 그저 나로서 평가될까 두려워, 쉽게 펜을 들지 못했다. 

그러나 나와 닮아 보였던 펄롱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두려움에 굴복한 채 가만히 있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그는 그렇게 자신에게 던진 질문에 답이라도 하듯 행동한다. 모두가 침묵할 때 소녀에게 손을 내민 유일한 사람이 된다. 그의 내면에는 깊은 고뇌가 자리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부조리와 묵인 앞에서도 선뜻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강인함이 있었다. 글을 쓰는 순간이 버겁게 느껴져 주저하던 나는 그런 그의 순간을 동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펄롱이 무수한 망설임 끝에 마침내 소녀를 향해 발걸음을 떼었듯 나도 용기를 내어 펜을 든다. 그것이 누구에게 닿을지는 알 수 없지만 번민 속에서 ‘수습’의 과정을 지나온 지금, 한 가지는 확신한다. 펄롱의 작은 발걸음이 소녀의 인생을 바꾼 것처럼,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변화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내 글을 조금 더 아껴주려 한다. 나를 지켜주던 ‘수습’이라는 방패는 없지만 지금의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는다. 펜을 든다는 것은, 곧 세상을 바꾸는 첫걸음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