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리뷰] 시트콤의 일상, 오래 보고 싶은 사람들

2025-03-22     신하연 편집위원
△ 사진= Freepik

  ‘밥친구’라는 말이 있다. 친구라고 해서 꼭 사람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듯이, 나의 밥친구는 이삼십분 가량되는 부담없는 한 편의 시트콤이다. 가끔은 밥을 다 먹었음에도 그 친구를 보내주기 싫어 자리에 더 앉아있기도 한다. 시트콤은 나에게 순수한 웃음을 주고 따뜻함도 주며 가끔은 눈물도 준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시트콤을 애정한다. 특이한 점은 매일 새로운 콘텐츠가 쏟아져나오는 콘텐츠 과잉 공급의 시대에 내가 보는 시트콤은 모두 2000년대 이전의 것이라는 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시트콤이 죽은 이유에 대해 말하지만, 난 여전히 시트콤이 살아있다고 느낀다. 다만 우리가 아는 올드 미디어에서 새로운 시트콤이 나오지 않을 뿐이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옛 시트콤들의 새로운 클립은 그 조회수와 댓글 반응이 아직도 열띠다. 사람들은 시트콤 속에서 자신의 젊은 날을 추억하고, 당시 유행어를 재치있게 주고 받는다. 영상 속 시트콤의 팬덤이라면 알 수 있는 팬들만의 장난을 주고 받으며 놀이는 현재진행형에 있다. 이러한 온라인 상의 반응은 시트콤에 대한 수요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왜 새로운 시트콤은 만들어지지 않는걸까. 

  시트콤과 다르게 오늘날에도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콘텐츠는 로맨틱 코미디(이하 ‘로코’) 미니시리즈다. 로코 드라마의 인물들은 이상적인 남녀 주인공이다. 수려한 외모를 비롯해 완벽에 가까운 인물 설정은 보는 순간 매력적이어서 사랑에 빠지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반면 시트콤 속 인물들은 완벽하지 않다. 오히려 바보 같은 면이 돋보이고, 굳이 말하자면 결점 있는 인물들이 대다수다. 이러한 인물 설정은 시트콤에서 유머 코드로 작동한다. 그런데 에피소드를 한 회차씩 넘기다 보면 우린 인물들 한명 한명 모두에게 정들어있고, 시트콤이 막을 내릴 땐 마치 오랜 친구를 더 이상 못 보는 것처럼 아쉬워한다. 사람들은 긴 시간 시트콤 속 인물들과 함께하며 다양한 순간들을 공유한다. 직장에서 비호감이기만 하던 상사는 퇴근 후엔 사람 좋은 옆집 이웃이고, 잘하는 일 없어 보이던 동료는 사실 사무실의 분위기 메이커다. 시트콤 속에서 매 순간 바보 같기만 한 인물은 없고, 매 순간 완벽하기만 한 인물도 없다. 시트콤의 인물들은 입체적이고, 또 오랜 시간 관객인 우리와 함께하며 성장하기도 한다. 모자라 보이기만 하던 인물들의 성장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응원하게 되고 애틋함은 커져간다.

  시트콤과 내가 맺을 수 있었던 관계엔 시간이 필요했다. 한없이 이해할 수 없었던 인물에게서도 오래보다 보면 일순간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하는 때가 온다. 어떤 사람은 오래 보아야 비로소 그 ‘사람’이 보이는 때가 있는 법이다. 지나고 보면 비호감이던 인물도 비호감인 순간만 있었던 것 뿐, 그 사람이 비호감이었던 적은 없다. 세상에 밉기만 한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좀 미운 구석이 있으면 어떤가. 괜히 미운 정이라는 단어가 있는 것도 아닐테다. 숏폼이 성행하는 시대에 사람들은 더 이상 긴 시간을 들여 이런 인물들과 정을 쌓을 여유가 없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로코 드라마 속 완벽한 남녀 주인공과 사랑에 빠지거나 혹은 이미 친숙한 옛 시트콤의 인물들과 같은 에피소드를 보고 또 보며 정을 이어 나간다.

  나는 이 같은 시간이 단지 우리가 보는 시트콤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사람은 단순히 소비해 버리고 마는 존재가 아니기에, 우리 일상 속에서의 무수한 관계들은 시간이 필요하다. 우린 모두 로코 드라마 속 완벽한 남녀 주인공도 아니며, (인정하기 싫을 순 있어도) 우리의 일상은 시트콤 속 인물들과 더 가까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고, 이들을 더 오랫동안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