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우 스케치] 너를 이해할 수 없기에  네가 존재함을 믿을 수 있다면

2025-03-22     김해솔 대학원생 고정필진
△ 미시마 요시하루의 ‘코다마 마리아 문학집성’ (사진=에이케이 코믹스)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 그 이상을 말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말보다 

 

더 말하기 위해. 

 

  나는 말하는 일을 중요시한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나 택하라면, 말하는 일을 택할 것 같을 정도다. 그럼에도 최근 나는 말하는 일을 포기했다. 좀 더 정확히는, 말을 글로 쓰는 일을 포기했다. 말하는 일과 글을 쓰는 일이,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말을 할 때 우리는 같은 시공간에 있지만, 글을 쓸 때 우리는 같은 시공간에 있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자꾸 말하는 일과 글을 쓰는 일을 동일시했고. 그러니까 글을 쓸 때도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고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것처럼 썼고, 그래서 종종 오해를 샀다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정말로 말을 글로 쓰고 싶었다면, 나는 써야 했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몸짓을 취하고 있는지. 내가 너를 얼마나 생각하고, 또 믿고 있는지. 알려줘야 했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상대의 눈빛을 살피는 사람처럼. 상대의 눈빛을 살피다, 준비한 해명을 삼키거나 계획에 없던 변명을 늘어놓는 사람처럼. 정황을 만들어야 했다. 형식을 만들고, 고백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 시도 썼던가. 시를 쓸 때는 혼자일 때도 대화를 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드니까. 시를 쓰는 존재가 나일지언정, 시 속 화자는 내가 아니니까. 시 속 화자가 나를 쏙 빼다 닮았다 해도, 내가 쓰는 시의 화자는 내가 아니다.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화자를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종종 화자와 대화해야만 한다. 질문하고, 또 대답해야만 한다. 최근 김승일 시인의 추천으로 읽게 된 만화 [코다마 마리아 문학 집성]에 등장하는 후에다 군은 시력이 나쁘다. 시력이 나빠서 문학부의 부장 코다마 씨의 짧은 머리카락을 긴 머리카락으로 본다. 자기 멋대로, 남들과는 다른 자기만의 방식으로 코다마 씨를 본다. 자기만의 상상친구도 있다. 상상 친구는 후에다 군에게 묻는다. “코다마 씨가 내(후에다 군)가 아니라고 증명할 수 있어?” 친구의 질문에 후에다 군은 말한다. 

 

못 해.

하지만 코다마 씨가 내가 아니란 건 알았어. 코다마 씨의 말은 

뜻을 알 수 없으니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내가 말할 수 있을 리 없잖아. 

 

  너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네가 내가 아님을 믿을 수 있다면. 네가 내가 아니기 때문에, 네가 존재함을 믿을 수 있다면. 네가 존재하기 때문에, 나 또한 존재함을 믿을 수 있다면. 나는 온 힘으로 말하고 싶다. 너를 이해할 수 없다고. 이해할 수 없어서 짜증나고 이해할 수 없어서 슬프고 이해할 수 없어서, 좋다고. 우리가 우리가 아니라는 게. 너는 너로, 나는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게 나는 너무 좋다고. 이 말을 하기 위해 이 글도 쓰고 있다고. 말을 글로 쓰는 걸 포기했다고 써놓고, 다시 말로 글을 쓰고 있다고. 알고 싶어서. 내가 너를, 네가 나를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지 알고 말하고 싶어서. 그 이상을, 이해할 수 있는 것 그 이상을 말하고 싶어서. 조금만. 조금만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