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골동의 '멋'으로 전통의 '힙'을 전하다, 박영빈 동문
오래된 물건에 나만의 이야기를 더할 수 있는 골동품의 매력 중앙도서관 고서실 근무로 전통문화에 대한 흥미 키워 "자신이 진정으로 몰두할 수 있는 것에 파고들어 보길"
옛것의 아름다움을 조명해 온 우리대학 불교학부 11학번 박영빈 동문. 박 동문은 스스로를 ‘골동 덕후’이자 ‘프로 골동러’라 부르며 골동품 수집과 전통문화 연구에 몰두해 왔다. 또한 그는 골동품과 함께 한 여정을 저서 『골동골동한 나날』에 진솔하고도 유쾌하게 담아냈다. 그가 전하는 옛 물건의 매력은 무엇일까. 박영빈 동문을 만나 골동품과 함께해 온 시간에 대해 들어봤다.
Q. 안녕하세요, 박영빈 동문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 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불교학부 인도철학과를 졸업하고, 인도불교전공 석·박사 통합 과정을 수료한 박영빈입니다. 현재는 불교·밀교·회당학 등을 연구하는 한국밀교학회의 간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Q. 대학 시절 불교학을 전공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A. 어린 시절부터 사찰을 자주 방문하며 불교의 매력에 빠져들어 불교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하게 됐습니다. 불교미술전공과 불교학부 사이에서 고민하기도 했으나 미술보다는 불교 철학 자체에 더 큰흥미를 가졌기에 불교학부를 선택했죠. 불교학부 수업에서는 주로 불교의 교리나 철학 체계를 다뤘기 때문에 골동품 수집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중앙도서관 고서실에서 근로하며 옛 경전과 고서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이때의 경험으로 전통문화에 더 깊은 흥미를 가지게 됐어요.
Q. 동문님께서 골동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와 골동품 수집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가 궁금합니다.
A.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앞서 말씀드렸듯 어린 시절부터 전통문화와 불교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 자연스레 골동품으로 이어지게 된 것 같습니다. 본격적으로 전통문화와 관련된 물건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학부 1학년 때부터였고, 골동품 수집은 대학원에 들어가면서 시작했습니다. 특히 저는 불교문화와 옛 선비들이 사용하던 문방구류에 큰 관심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글씨나 그림을 그릴 때 쓰던 공예품과 관련된 물건을 가장 좋아합니다.
Q. 동문님께서 생각하시는 골동품만의 특별한 매력은 무엇인가요?
A. 제가 생각하는 골동품의 매력은 ‘옛것을 이어받아 사용하는 즐거움’과 ‘아름다운 것을 곁에 두는 삶’이에요. 골동품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죠. 골동품을 구매하거나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을 관람하면서 물건의 유래나 쓰임새를 알게 될 때면, 그 물건이 지나온 시간이 생생하게 느껴져요. 이렇듯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물건이 간직한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가는 것이 골동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 생각해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골동품은 그 고유한 가치만으로도 빛나는 아름다운 물건입니다. 어릴 적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는 세계 각국에서 모은 골동품을 거실에 전시해 두셨는데, 저는 그 반짝거리고 예쁜 것들을 자주 감상하곤 했어요.
Q. 과거에 사용된 물건을 수집하고 애용하는 일은 동문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A. 오래된 물건이 가진 고유한 이야기에 나만의 서사를 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또한 제가 새롭게 부여한 의미를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큰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공예품의 진정한 완성은 사용자가 이뤄낸다고 생각해요. 즉, 진열장에서 방치되던 물건이 제 손에 들어와 본래의 쓰임새와는 다르게 활용될 때 공예가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죠. 이렇게 오래된 물건의 역사에 제 이야기를 더하고, 나아가 제 이름을 남길 수 있다는 것에 만족을 느낍니다.
Q. 동문님께서는 저서 『골동골동한 나날』에서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없으면 들이지 않는다’는 원칙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사용하고 계신 골동품이 있나요?
A. 저는 누군가의 쓰임을 위해 만들어진 골동품들이 실생활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사용될 때 비로소그 가치가 빛난다고 생각해요. 골동품 혹은 고미술품들이 수장고 안쪽에 묵혀 먼지만 쌓이고 있다면그것을 과연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골동품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실생활에서 자리 잡고 쓰임을 다할 때 완성됩니다. 제가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골동품은 다완과 찻잔, 그리고 향로입니다. 또한 한복을 자주 입고 다니다 보니 갓이나 장도, 애체(안경) 등 복식 관련 유물도 애용 중이에요. 옛 물건과 골동품을 실사용할 때 더 즐겁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이 사용하려고 합니다.
Q. 골동품을 일상에서 활용할 때와 보관 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겉보기에는 튼튼해 보이더라도 골동품은 오래전에 만들어진 물건이기 때문에 실사용할 때 충격에 특히 주의해야 하며 보관에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합니다. 저는 수집한 골동품들을 부패와 습기, 충해에 강한 오동나무 상자에 보관하는 편이에요. 목재나 지류 문화유산은 습도가 중요해서 너무 건조하거나 습한 환경은 피하고, 직사광선이 닿지 않게 보관해야 합니다. 한지류의 경우에는 좀벌레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방충제를 사용하는 것이 좋아요.
Q. 동문님께서 특별히 소중하게 여기시는 골동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18세기 티베트에서 조성된 ‘티베트 양식 금동불’입니다. 제 전공이 티베트 불교다 보니 더욱 각별히 여기게 됐어요. 중고 거래 앱에서 골동품들을 둘러보던 중 우연히 발견했는데 기존 불상들과는 다르게 생겨 흥미가 생겼고, 직접 찾아가서 확인해 구하게 됐습니다.
Q. 골동품을 수집하시며 기억에 남은 일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우리대학 미술사학과의 원타스님과 함께 도난당한 정혜사 ‘산신탱’을 환수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30여 년 전, 산신탱을 포함한 정혜사의 탱화가 모두 도난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작년 3월, 서울 고미술 경매에서 그동안 행방불명이었던 산신탱이 모습을 드러냈죠. 스님과 저는 화기를 판독해 해당 탱화가 사찰의 도난품인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후 원타스님과 함께 SNS에서 모금 활동을 하며 금액을 마련했고, 경매에서 탱화를 입찰해 되찾아 올 수 있었어요. 탱화 같은 성보문화유산은 종단이나 사찰 측에서 나서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에는 직접 모금해 문화유산을 되찾아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죠.
Q. 동문님께서 SNS 인플루언서로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A. ‘X(구 트위터)’에서 ‘연근들깨무침’이라는 이름으로 주로 활동하고 있어요. 해당 계정에서 대표적으로 ‘고금정보 타래’를 쓰며 전통의 세계를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고금정보 타래는 제가 중국 전통 악기인 고금을 배우며 느낀 점과 이에 더해 많은 사람들이 고금에 대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작성한 글이에요. 고금은 중국에서 시작돼 우리나라 궁중에서도 사용된 악기로, 단순히 연주를 즐기는 것을 넘어 정신 수양이나 명상의 도구로 사용됐습니다. 학부 시절엔 고금을 배울 기회가 없었는데, 지금은 고금을 다루시는 분을 찾아 취미로 즐겁게 배우고 있어요. 이뿐만 아니라 ‘연근컬트샷다’라는 계정에선 좀 더 색다른 활동을 펼쳐 나가고 있습니다. 연근컬트샷다는 종교 안에서 행해지는 여러 의례의 배경이나, 그 안에 담긴 의미들을 쉽게 풀어 소개하는 오컬트 계정이에요. 작년엔 ‘학문적으로 오컬트 파기’라는 글로 오컬트가 가진 상징성이나 철학을 알기 쉽게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Q. ‘프로 골동러’이자 ‘전통문화 덕후’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동문님의 삶에 어떤 의미인가요?
A. 젊은 사람으로서 옛 문화를 아끼고 즐긴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전통문화나 골동품은 비교적 낡은 문화라 젊은 사람들이 쉽게 매력을 느낄만한 것은 아닐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옛것을 이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동문님께서는 현대 사회에서 전통문화와 예술이 지니는 의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옛날 문화를 보고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장 한국적이며 우리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찾다 보면 결국 길은 전통문화로 통하게 돼요. 전통문화가 현대사에 계승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 아이디어의 근원적인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예술가들은 옛 문화에서 새로운 모티브를 찾거나, 기존 아이디어에 전통을 가미하기도 합니다.
Q. 전통문화나 골동품에 관심을 가지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을까요?
A. 이 분야로 나아가기 위해선 전통문화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는 것이 중요해요. 그러기 위해선 고전 서적을 보며 전통문화에 대한 넓은 지식을 쌓거나, 관련 전시를 많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거예요. 저는 중앙도서관 고서실에서 근무할 당시 옛날 경전이나 고서들을 접하며 자연스럽게 견문을 넓힐 수 있었어요. 또한 동국대학교 박물관에도 눈여겨볼 만한 문화유산들이 많습니다. 고려 수월관음도의 도상과 똑같은 불상도 있고 신라시대 석불과 경희궁 옥좌 위 장식됐던 용 장식도 전시돼 있어요. 시간이 날 때 박물관에 들러 옛것의 깊은 매력과 가치를 느껴보시면 좋겠습니다.
Q. 각자의 꿈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는 우리대학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불광불급’이란 말이 있듯 무언가에 계속 파고들다 보면 언젠가는 길이 보이기 마련입니다. 자신이 정말로 관심 있는 분야가 있다면 본인을 굳게 믿고 더 깊이 파고들어 보세요. 저는 “너 전통문화 공부하는 건 좋은데, 졸업해서 뭐 해 먹고 살래”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전공 공부를 이어 나갔고 지금은 책도 내면서 전통과 함께하는 즐거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어요. 여러분도 자신이 진정으로 몰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누가 뭐라 하든 자신의 길을 믿고 계속 정진하면 좋겠습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옛것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의미를 더해온 박동문. 전통문화를 진정으로 향유하며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그의 여정을 동대신문이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