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인터뷰] 삶의 형식으로 시 쓰기, 시의 형식으로 살기. 조해주 시인
우리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생 조해주는 시인이다. 조해주 시인을 인터뷰하기 전, 나는 그가 ‘나’와 ‘세상’과의 거리를 그 누구보다 잘 조율하는 균형감 있는 시인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뷰가 끝난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안 맞는 걸 자꾸 맞추려고 하다 보니까 흔들림 같은 게 계속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균형감 있는 사람 같다는 말은, 그 누구보다 흔들리고 있는 사람 같다는 말과 같을지도 모르겠다고.
김해솔 : 안녕하세요. 조해주 시인님. 간단한 자기소개와 근황 부탁드립니다.
조해주 : 안녕하세요. 시 쓰는 조해주입니다. 그간 출간한 시집으로 『우리 다른 이야기하자』와 『가벼운 선물』이 있습니다. 박사 수료하고 이번 학기에는 지도 교수님 수업을 청강하고 있어요. 아주 가끔 시도 쓰고요. 얼마 전 소논문 투고하고 수정하고 그러느라 좀 정신이 없었습니다. 요즘 제일 자주 하는 생각은 조카에 대한 건데요. 만 1살인 조카가 가까이 살고 있어서 마감을 빨리 끝내고 가서 같이 놀아야겠다, 이런 생각을 요즘 자주 해요.
김해솔 : 조카 분을 왜 자주 보러 가세요?
조해주 : 성격이 잘 맞는 것 같아요. 동생은 제가 오면 조카가 자길 안 찾아서 신기하다고 하더라고요. 조카가 소유한 장난감들이 저한테도 재밌는 것들이어서 저도 같이 잘 놀아요.
김해솔 : 조카 분이 많이 울지는 않나요?
조해주 : 비교적 많이 울지는 않는 편인 것 같아요.
김해솔 : 아이들은 왜 많이 울까,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우는 법 밖에 모르기 때문일까. 오, 그런데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하자』의 자술연보에 따르면, 해주 시인도 어릴 때 잘 울지 않는 아이이지 않았나요? 가끔 부모 보다 삼촌이나 고모랑 되게 닮기도 하잖아요. 가령, 저는 엄마도 닮았지만 작은삼촌이랑 엄청 닮았거든요. 해주 시인 성격은 좀 어떤가요?
조해주 : 제가 생각하는 제 성격과, 사람들이 느끼는 제 성격이 다른 것 같은데요. 저는 제가 장난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제가 이야기를 하면 다 진지하게 듣기 때문에, 남들이 생각하는 대로 진지하게 하려고 하죠. 나는 장난이었는데 그쪽에서 진지하게 들으면 위험하잖아요. 그런데 웃기고 싶은 마음이 늘 있기 때문에 그걸 좀 참으려고 해요. 잘 안 되지만요. 어쩌다 웃기면, ‘해냈네’ 하면서 약간 뿌듯해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다 그렇지 않아요? 웃기면 되게 뿌듯한 마음 들지 않아요?
김해솔 : 맞아요. 저도 그 마음 엄청 있습니다. 그런데 전 좀 되려 반대로, 사람들이 절 웃기게 보고, 저는 절 너무 진지하게 보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해주 시인의 시집 『가벼운 선물』에 등장하는 「처음 보는 사람」을 보면, 어른스럽다는 이야기를 듣고, 뭔가를 감내하는 듯한 화자가 등장했던 것 같아요.(“그는 내가 어른스러운 사람이라고 한다/깊이가 느껴진다고 한다//나는 순간 숨을 짧게 들이쉰다”) 그래서 이 감내하는 화자의 시선이랄까, 그런 게 좀 궁금했고, 대화를 할 때도 시를 쓸 때도 밸런스가 좋다고 느껴지는데, 어떻게 이런 균형감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조해주 : 첫 시집을 내고 나서 균형감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던 것 같은데요.‘그런가?’하고 생각을 해보기는 했던 것 같아요. 아주 빠져 있지는 않았지만요. 그 생각에 너무 빠져 있지 않았다는 것도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균형감 있는 태도로 보이긴 하겠네요.(웃음) 글쎄요. 저는 제가 균형감이 안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렇게 되든 안 되든, 기본적으로는 나를 대하는 태도와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 큰 차이를 두지 않으려고 하는 데요. 내가 했을 때 괜찮은 것, 타인이 했을 때 괜찮은 것에 각각 차별을 두지 않으려고 하는 거죠. 역지사지랄까. 그게 균형감 있고 객관적인 태도처럼 보일 수 있겠다 싶긴 해요. 이렇듯 나와 타인을 공평하게 대하는 태도는 한편으로, 나에게 너무 냉정한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나니까 나한테 조금은 더 기울어지게 행동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나는 나한테 가장 중요한 사람이니까. 그래야 균형이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사람이 약간은 자신의 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데, 안 맞는 걸 자꾸 맞추려고 하다 보니까 흔들림 같은 게 계속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김해솔 : 오, 맞아요. 세상이 너무 크니까, 되려 내가 내 편을 들어줘야 좀 밸런스가 맞지 않을까 하는. 그래서 저는 제 쪽으로 기울어지는 경우가 상당한데, 해주 시인은 저랑은 좀 다르게 그렇지 않게 느껴져서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궁금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희가 좀 유사하다고 느낀 점도 있었는데, 가령 해주 시인의 시 「생각에게」라는 시를 보면, ‘걱정보다 병적인 것은 걱정 없이는 외롭다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잖아요. 저는 생각 자체가 저의 너무 소중한 친구고, 생명체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서, 이 지점에서 저희가 뭔가를 인식하는 방식이 유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해주 : 해솔 시인님이 말씀하시는 “생각”은‘시’의 동의어인 것 같아요.
김해솔 : 오, 그런 것 같아요.
조해주 : 저도 그래요. 우리가 뭔가를 인식하는 방식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건 시를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그 시를 쓴 지 거의 10년 정도 되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시간의 간극이 있지만,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생생히 기억나요. 그때는 뭐랄까. 싸우고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든 나를 데리고 살아야 되긴 하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편함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는 상태였던 것 같고. 그 시가 “생각에게 부탁한다/제발 기척 좀 하세요”로 시작하는데요. 나의 생각을 내가 바라본다는 관념적 행위에 깊이 빠져 있었던 것 같아요. 생각이라는 건 되게 골치 아프지만, 막상 없어지면 섭섭한 거. 아니, 섭섭한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아예 살지 못할 정도로 중요한 거. 시 같은 거. 그래서 그런 시도 썼던가. 그때의 마음으로는 생각이 없으면 ‘나’가 안 될 것 같았어요. 특별한 어른이 되고 싶었나 봐요. 그런데 그게 당장 안 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 빈 공간을 걱정이라고 하는, 드라마틱한 에너지로 채우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20대 초반에는 무언가를 채우고 누적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삶의 이유에 대한 생각도 걱정도 전혀 하지 않고, 순간들을 만끽하려고 해요. 이건 제 비밀인데, 집에 있을 때 스트레스 해소 방법 중 하나가 재채기를 원 없이 하는 거거든요. 재채기가 나올 것 같으면, 후회 없이 재채기를 해요. 이를테면 오늘 먹은 빵의 맛, 이런 감각들이 삶의 전부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사람도 그렇죠.‘시절 인연’이라는 말 있잖아요. 한 시절을 같이 보냈던 사람과 멀어진다는 거 되게 슬픈 일이죠.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순간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에요. 저는 그때 그 사람이랑 지금의 그 사람이 그냥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김해솔 : 해주 시인이 쓴 시에 이런 구절이 있잖아요.“닮은 사람이라는 건/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뜻이야”(「아는 사람」) 전 이 말도 참 좋았거든요. 저는 저랑 다르다고 느껴지는 존재를 마주할 때 제 삶이 좀 덜 모조품처럼 느껴지는데, 이 말에 따르면 저랑 닮았다고 느껴지는 존재야 말로 사실은 다른 존재인 것 같고, 그러니까 사실은 제가 저랑 닮은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요.
조해주 : 다른 존재를 좋아할 때 현실이 진짜처럼 느껴진다니, 사랑할 때만 살아있다는 말로 들리네요.
김해솔 : 우리 다른 사람이라 생각하자. (「우리 다른 이야기하자」 패러디).
조해주 : 하하. 저 자신도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생각에게」를 썼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정말 같은 사람인가 싶어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지금 제겐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조카가 있으면,‘정말 귀여웠는데 왜 이렇게 징그러워졌니’ 같은 말 농담처럼 하잖아요. 저도 언젠가 그런 말을 할 날이 올까 싶긴 한데, 그렇게 되더라도‘다른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이 작은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을 즐겁게 보내는 데에만 마음을 쏟아요. 그런데 이모는 논문도 써야하고, 졸업하면 취직해야 되고……그러느라 놓치는 순간들이 있어서 좀 아깝네요.
김해솔 : 오호, 사실 저는 사람이 아무리 바뀌어도 외형은 잘 안 바뀐다고 생각 했었는데, 아기들은 시기에 따라 혁명적으로 외형도 바뀌네요. 또 한편으론, 그렇게 바뀌는데도 불구하고 안 바뀌는 지점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게 좀 희망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가령 저는 제가 어릴 때 찍힌 비디오를 가지고 있는데, 표정이나 말투 같은 게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지금이랑 비슷하더라고요. 되게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현재 박사 논문 쓰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연구 생활은 좀 어떠신가요?
조해주 : 그러네요. 저는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한결같다’고 말하곤 해요. 죽어도 안 바뀌는 지점이 분명 있죠. 그게 뭔지는 비밀이지만요. 말할 수 있는 tmi를 예시로 들자면, 엄마가 말하길 저는 어려서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뒷짐을 지고 걸었다는데, 사실 지금도 뒷짐 지는 게 습관이에요. 뒷짐 지고 걸으면 더 빨리 걸을 수 있어요.(?)
연구 생활……전에는 막연하게, 연구는 성실하면 되는 작업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시처럼 창조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연구도 창조적인 작업이고, 자기의 태도나 관점에 따라서 내가 어떤 사람인가가 글에 담기는 구나를 알게 되면서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요즘은 자유에 대해 관심이 있어요. 얼핏 시 쓰는 건 참 자유롭고 독립적인 작업 같지만, 문학이 제도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그렇지도 않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유롭게 쓸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다만 왜 자유롭지 않게 되는지, 부자유의 구조를 밝히는 것만으로도 좀 덜 부자유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등단제도나 문학권력 같은 것들에 관심이 계속 있는 것 같고요. 저에게 있어서 연구는 제가 시를 사랑하는 방식의 중의 하나인 것 같아요.
김해솔 : 연구는, 시를 사랑하는 방식 중의 하나. 그렇다면 조해주에게 ‘시’란 뭘까요?
조해주 : 또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오늘로서는 삶의 ‘형식’인 것 같아요. 삶의 이유랑은 좀 다르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를테면, 시를 처음 배웠을 때를 떠올리면서 연구라는 생소한 작업에 최대한 적응을 해보려고 했던 거거든요. 연구뿐 아니라, 사람을 대할 때도 그래요. 시는 재미있고 아름답지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거든요. 훈련을 통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되긴 하지만, 사실 안다는 착각을 하는 거지 정말 알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사람도 비슷해요. 저는 사람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잘 모르겠을 때가 많고요. 그렇지만 나름대로의 어떤 내적인 논리를 시를 읽듯이 읽어나가는 거죠. 아주 확신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외면하지도 않는 마음으로. 어느 정도는 읽었지만 그래도 내가 못 읽은 부분이 있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사람을 대하는 것 같아요. 다 이해하려고 안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시를 대하듯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저를 갇히게 만드는 것이기도 해요. 만사를 시의 형식으로 생각한다는 게 괜찮은 건가 싶기도 해요. 그런데 그런 방식으로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김해솔 : 해주 시인에게 ‘나’란 어떤 존재인가요?
조해주 : 알아가는 사이. 30대가 되면서 제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가고 있어요. 이를테면 만화방이라든지.‘짱구’라든지. 최근에는 친구가 모카포트를 선물해줘서 커피 마시는 시간을 더 좋아하게 됐어요. 여행 가면, 거기 있는 독립서점과 빈티지샵을 되도록 들르고요. 또, 저를 위한 선물을 가장 먼저 사고요.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저한테 잘해주려고 해요. 이번 주에는 작은 스피커와 앰프를 장만하기도 했네요. 반짝거리는 걸 모으며 둥지를 아늑하게 만드는 까마귀의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