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하나 천강에] 인공지능 시대, 한국 법원은 어느 단계에 와 있나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대응해 모든 분야에서 변화와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대법원도 예외가 아니다. 대법원은 오는 2025년부터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에 자동으로 판결문을 추천하는 생성형 AI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 기술은 법원이 사건을 접수하면 이 기술은 해당 사안과 유사한 하급심 판결 10건을 자동으로 추천해 주며, 기존의 법고을LX(국내 최대의 법률정보 데이터베이스)에서처럼 키워드로 판례를 검색하는 것을 지양한다고 한다. 생성형 AI는 새로운 사건 서류의 텍스트를 분석한 후, 가장 유사한 판결문을 추천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생성형 AI는 서면 요약 서비스도 제공한다. 대법원은 이러한 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예산을 확보한 상태다. 이를 통해 법조인들의 업무 효율성 상승이 기대된다.
현재 한국 법원은 법률 데이터 보호 등의 이유로 판결문 작성 도우미 AI 기술을 도입하지 않고 있다, 여기서 판결문 작성 도우미 AI는 법률 지식 데이터를 활용하여 판결문을 작성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현재 사법부의 가장 큰 당면 과제는 ‘재판 지연’이다. 천대엽 신임 법원행정처장은 2024년 1월 취임식에서 ‘재판 지연’ 해소를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신속·공정한 재판을 통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구체적 방안을 열거했는데 그 중 하나로 AI 활용을 들었으며, 강민구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법원 재판업무 지원을 위한 AI 도입이 이 문제를 크게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과거의 판례 데이터를 사용하여 판결문을 작성하여 시대에 뒤떨어진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도 크다. 법관들 사이에서도 판결문 작성을 AI에 맡길 수 없다는 의견도 많다. 왜냐하면 한국은 현재 판결문 전문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고품질의 법률 데이터를 모으기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 법원은 생성형 AI를 판결문 작성에 활용하고 있다. 중국 법원에서는 판사가 사건 번호를 비롯한 간단한 정보를 입력하면 이후 생성형 AI가 해당 정보를 종합하여 자동으로 판결문을 생성하게 된다.
2020년 12월 23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학계·기업·시민 사회를 아우르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인공지능(AI) 윤리기준」을 마련하면서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우리 사회에서 AI의 도입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예를 들어 2021년 4월 21일 EU 집행위원회는 인공지능 활용, 투자 및 혁신을 촉진하는 동시에 인공지능 개발 및 활용에 대한 신뢰, 기본권 및 사용자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총 85개 조문으로 이루어진 인공지능법안(EU’s AI Act)을 마련하여 현재 유럽 의회의 투표와 회원국의 승인 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유럽 의회는 이 법안이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의 위험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면서도 혁신을 촉진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 법안에 따르면 EU는 AI 활용 분야를 총 네 단계의 리스크 등급으로 나누어 차등 규제할 예정이다. 또한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를 개발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투명성 의무’를 부여할 예정이다. 이는 2021년 초안에는 없었으나, ChatGPT 등 생성형 AI가 보편화되면서 AI 오남용에 대한 우려가 커져서 추가되었다. 이 법안은 EU 27개국 장관들의 최종 승인을 거친 후 관보에 공포되어 발효될 예정이다. 일부 금지 조항은 이르면 2025년 상반기 해당 법률이 시행될 예정에 있으며 2026년 이후에는 전면 시행된다.
현재의 기술력으로 법고을LX에 수록된 주요 대법원 판례, 각급 법원판결, 헌법재판소 결정례, 대법원 규칙·예규·선례, 법원도서관 소장 도서목록 및 저작권 동의한 법학 논문의 원문 자료 등을 이용하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다면 법률 분야에서 AI 기술의 적용은 필연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적용이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법률 분야의 특성을 고려하여 AI 기술을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측면뿐만 아니라 법조인, 더 나아가 일반 국민의 관점도 고려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조건 없는 거부나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인공지능·윤리학·법학·행정학 등 학계·기업·시민단체를 아우르는 주요 전문가들이 자문과 의견 수렴 과정에 참여하고 공개 공청회 등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 AI 기술의 적용 방향을 인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긍정적인 결과를 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