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벼랑 끝 출판계, 위기를 넘어 부흥으로
출판계 불황, 독서 인구 감소로 매년 심화돼 충무로 인쇄거리에도 불황의 그림자 드리워 “새로운 독서 문화의 출현은 출판계에 좋은 단초가 될 것”
텔레비전이 없던 시절, 출판산업은 세상을 잇는 가교와도 같았다. 정보와 소통의 매개였던 출판계는 195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으나, 디지털 매체로의 전환과 책을 대체하는 문화 콘텐츠의 범람으로 점차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달 10일,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침체된 출판계에 한 줄기 빛이 됐다. 이 빛이 출판계의 도약을 이끌 서광이 될지 아니면 일시적 현상에 그칠지 출판계 불황과 부흥의 가능성을 살펴봤다.
더 이상 책 읽지 않는 사람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출판사의 총영업이익은 2019년 4,685억 원에서 2023년 1,136억 원으로 급감했다. 매년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을 갱신하는 출판계. 그 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독서 인구의 현저한 감소에 있다.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 내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중 1권 이상 읽은 비율인 ‘종합 독서율’은 2013년 72.2%에서 2023년 43.0%로 10년 새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오늘날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과 같은 숏폼 콘텐츠가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책과 같은 긴 호흡의 매체는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지는 종이책, 뜨는 전자책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독서의 형태 역시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변화하고 있다.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 에 따르면, 성인 종이책 독서율은 2년 전보다 감소한 반면 전자책 독서율은 상승했다. 코로나19 당시,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지 못한 사람들이 종이책 대신 전자책을 선택하면서 전자책 플랫폼 시장이 성장한 것이다. 전자책 플랫폼 ‘밀리의 서재’의 지난해 매출은 566억 원으로 전년 대비 23% 증가했다. 또한 웹툰과 웹소설 및 전자책 서비스를 제공하는 콘텐츠 플랫폼인 ‘리디 (RIDI)’는 2022년까지 14년 연속 매출 성장을 기록하며, 매년 최저 실적을 기록하는 타 출판업 및 오프라인 서점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전자책이 급부상하는 한편, 종이책 시장은 쇠퇴하면서 출판계와 공생관계인 인쇄계도 타격을 입었다. 우리대학 인근의 충무로 인쇄거리 또한 불황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충무로 인쇄거리에서 출판 및 인쇄 전문업체 ‘애드몰’을 운영하는 정유호 씨는 “인쇄거리 불황의 원인은 제작비 인하에 있다”며 “경기 불황으로 복사물 단가를 낮출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전했다. 또한, 충무로 인쇄거리의 인쇄 전문 업체 ‘솔텍’에서 근무 중인 유지훈 씨는 충무로 인쇄거리도 더 이상 예전의 명성만 못하다며 그 이유로 출판물의 디지털 전환을 언급했다. 그는 “이제는 전자기기로 책을 읽고 보험 약식도 종이가 아닌 태블릿에 작성하는 추세”라며 인쇄계가 마주한 차가운 현실을 토로했다. 이어 유 씨는 “현재 인쇄계는 라벨지 등 몇몇 인쇄물로 부지하고 있지만 전단지나 책과 같은 출판물 인쇄는 곧 사라질 것”이라며 인쇄산업이 점차 축소될 것을 전망했다.
가뭄 같던 출판계에 내린 ‘한강’이란 단비
지난달 10일,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출판계와 인쇄계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를 비롯한 한강 작가의 도서 판매량이 수상 이후 5일 만에 100만 부를 돌파하고 서점 ‘오픈런’ 현상이 이어지는 등 이른바 ‘한강 신드롬’이 일어난 것이다. 이에 출판사와 서점은 물론 평상시 도서를 판매하지 않던 편의점과 e커머스 업체까지 앞다퉈 한 작가의 저서를 판매하며 물량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에서는 지난달 독서 모임을 제안하는 게시물의 수가 9월 대비 2배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전국적으로 한강 신드롬이 확산되는 가운데, 독서 문화가 재활성화되며 출판·인쇄계가 부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조이원(화공 24) 학우는 “이번 노벨 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채식주의자』를 읽어보려 한다”며 “한강 작가의 책 외에도 다른 작가들의 문학 작품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언급했다.
출판계, 침체기 벗어날 수 있을까
과연 한강 신드롬은 독서 문화의 부활로 이어질 수 있을까. ‘JEI재능교육(재능출판)’에서 30년간 근무한 황지성 전 재능출판 편집장은 “최근까지 침체하던 출판 시장에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것은 사실이나, 이번 성장이 일시적 호황에 그치지 않도록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그러나 한강 신드롬 이후 높아진 기대감과는 달리, 출판 지원금은 대폭 삭감된 상황이다. 2024년 정부 예산에 따르면, 올해 출판 지원금은 428억 원으로 전년도 예산 대비 45억 원이 줄어들었다. 이에 대해 황 전 편집장은 “정부의 급작스러운 예산 감축으로 인해 출판사, 서점, 도서관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출판 생태계가 유례없이 어려운 시기를 맞았다”며 “정부 지원의 철회는 발행 가치보다 판매 이익을 우선하는 작금의 행태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출판은 타 제조업과 달리 국가의 정신적 가치이자 교육과 문화의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출판계가 유지될 수 있는 정책적·구조적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정부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저조한 독서율과 예산 감축이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출판계는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도전을 시도 중이다. 출판사 ‘한겨레출판’은 독자들의 독서 집중도를 높이는 소설 맞춤 플레이리스트를 공식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하며 색다른 마케팅 전략을 선보였다. 소설 『식물, 상점』을 더욱 몰입감 있게 읽을 수 있도록 제작된 독자 맞춤형 플레이리스트는 2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실제로 해당 플레이리스트와 함께 소설 『식물, 상점』을 읽었다는 김시연(법학 24) 학우는 “플레이리스트를 우연히 접한 뒤 소설을 구매하게 됐다”며 “출판사는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유튜브를 활용한 마케팅 방식이 독특하게 느껴졌다”고 전했다. 또한 지난달 9일부터 이달 3일까지 서울 성수동에서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팝업스토어가 열리며 독자들의 발걸음을 이끌기도 했다. ‘문학과지성사’는 팝업스토어에서 도서를 구매한 고객에게 굿즈를 증정하고, 해시태그와 함께 SNS에 사진을 게시할 경우 추첨을 통해 책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해 도서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최근 출판계가 다양한 사업으로 독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지만, 이는 출판 불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출판계 부흥의 열쇠는 단순한 판매 촉진이 아닌 독서 문화의 부활에 있다. 일부 작품만의 호황을 넘어 독서 문화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해법은 무엇일까. 황 전 편집장은 “각 출판사만의 특색이 살아있는 콘텐츠 개발과 독자 맞춤 이벤트 등을 통해 출판사의 고정 독자층을 형성하고 그 범위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 핵심”이라며 출판계의 향후 과제를 제시했다. 또한 그는 “출판의 범위가 종이책에서 디지털, 공연, 전시 등으로 확장되며 각종 책 문화 프로그램이 증가하는 새로운 독서 문화의 출현은 출판계의 좋은 단초가 될 수 있다”며 “출판계는 이 기회를 발판 삼아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할 것”이라 전했다.
침체와 불황의 길을 걷던 출판계. 이제는 다시 도약할 수 있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바야흐로 콘텐츠 홍수의 시대 속에서 살고 있는 독자들도 출판이 지닌 가치는 무엇인지, 그리고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고민해 봐야 할 때가 아닐까. 독서의 계절인 가을을 맞이해 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금, 출판계 부흥의 바람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