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정적 靜寂

2024-11-14     이정화 시인

정적 靜寂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가 함께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일이 발생한다

 

모든 버튼을 누르며 

구조를 외친다

뛴다 울거나 자조한다

 

가늠하기 어려운 만큼의 시간이 흐른다

낯선 서로를 마주보다가 눈을 피한다

 

엘리베이터에는 두 개의 거울이 마주하고 있다

 

주저앉은 이들은 비추지 않은 채 

잘려나가는 질문과 조각나는 대답들

 

빛은 희미하다

이들은 말없이 먼지 묻은 구석을 쳐다본다 

그곳에서 새로운 존재를 발견해낼 듯이

 

이제 멈춘 엘리베이터 안에 습한 정적이 가득해지는데

 

손끝과 발끝이 저리다 숨이 막힌다

바이러스, 혹은 무뎌지는 인간이라는 감각 

 

이들은 점점 투명해져서 

그 속에 말이 다 비춘다 

거울 속이 시끄러워진다

 

춥네요. 우린 어떻게 될까요. 닫힌 문에 열쇠를 걸고 왔네. 어떤 가수를 좋아하세요? 아이가 기다릴 텐데요. 오이를 좋아하고 발톱 자르기에 신경 써요. 그저께 핸드폰 액정이 깨졌어요. 나이는 서른 둘. 연필깎이 소리에 이상한 쾌감이 있잖아요. 여름엔 역시 파라솔 아래서 휴가죠. 달팽이를 상추와 가둬놨더니 비오는 날에 홀로 번식을 했어요. 리모컨 어디 있죠?

 

고장 났어요 

 

정적에 짓눌려 잠에 든다 

이들이 꾸는 꿈은 엘리베이터의 안과 밖을 선회한다

 


이정화 시인

<시인 소개>

2023년 문학동네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