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리뷰] 흑백요리사를 통해 본 좋은 리더란 ?

2024-11-14     오솔미 편집위원
△ 사진= 넷플릭스

맛을 보여줄 수 없는 흑백요리사는 어떻게 대박이 났을까?

 올 하반기 가장 화제가 됐던 프로그램을 꼽으라면 단연<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일 것이다. 흑백요리사는 전체 회차를 한 번에 풀어버리는 넷플릭스답지 않게 순차 공개 방식을 선택해 매주 사람들을 기대하게 했고 방영 기간 내내 온갖 패러디와 밈으로 대한민국이 들썩였다.

 ‘오직 맛으로 승부하라!’고 외치는 이 프로그램의 슬로건은 시청자로 하여금 백수저인 유명 셰프들과 그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흑수저 셰프들이 계급장 떼고 오직 맛으로만, 실력으로만 경연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안내한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킥’이기도 한 심사위원 백종원이 안대를 쓰고 참가자들의 음식을 맛보는 장면 역시 진짜 맛으로만 평가하겠다는 이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장치일 것이다.

 기존에도 여러 요리 경연 프로그램이 있었으나 흑백요리사는 참가자들을 인지도와 경력에 따라 백수저와 흑수저로 나눠 대결하는 구조를 채택했다는 점에서 초반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사실 이 대결 구도를 보고 ‘아, 대충 언더독의 서사를 부여하겠구나’고 예상했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흑수저 참가자에게 알고 보니 인생에 굴곡진 여러 사연이 있고 경연마다 두각을 나타내며 시청자들의 응원을 받으며 결국엔 심사위원 급으로 등장해도 손색이 없을 유명한 백수저 셰프를 꺾고 우승하는, 그야말로 보는 이들에게 감동과 희열을 선사하며 새로운 스타로 발돋움하는 방식, 뻔하지만 먹히는 결과. 비교적 정석의 방법을 따르지 않는 시도를 많이 하는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이기에 반전의 결과가 있지는 않을까 했으나 내 예측이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고 본다.

 맛을 보여줄 수 없는 흑백요리사지만 이 프로그램은 맛 이상을 느끼게 할 화려한 편집과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서의 서사가 충분했다. 시청자들은 화면 속 음식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없는 대신 그 음식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그 음식이 나오기까지의 배경과 스토리에 공감하기도 한다. 여기서 팀 리더의 리더십과 팀워크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주요 재료가 되기도 한다.

 여러 명의 셰프들이 한 팀을 이뤄 요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리더의 역할은 승패를 좌우할 만큼 매우 중요하다. 흑백요리사에서 보여준 ‘성공한 리더십’은 기존의 문법과 다른 모습으로 발현이 되어 곱씹어 볼만 하다. 일반적으로 좋은 리더로 여겨지는 자질은 겸손한 자세로 본인을 낮추고 구성원을 섬기는 것이다. 팀원 간의 의견이 다를 때 소수의 의견도 존중해가며 모두의 의견을 경청해 합리적인 결론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흑백요리사는 이런 전통적인 리더십의 허점을 찌른다. 

 제한 시간이 있는 요리 미션에서 한 셰프는 본인보다 한참 경력이 많은 선배 셰프에게도 주저 없이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배분해 준다. 또한 본인이 제시한 메뉴에 대해 팀원들이 갸우뚱한 표정을 지으며 재료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의견을 말하지만, 본인만 믿고 따라오라며 대화를 종결한다. 또한 재료 손질에서도 팀원과 의견이 다르지만, 본인의 방향대로 밀고 나간다. 이 모습이 조금은 독단적일지라도 팀원들이 리더의 의견에 일단 묵묵히 따랐고 결국에 팀은 승리했다. 중간에 본인 팀의 식자재가 모자라자 상대 팀에 가서 아무렇지 않게 재료를 빌려다 쓰는 뻔뻔함이 있더라도, 조리 전 특정 재료를 얄밉게 모두 싹쓸이해 오더라도 어쨌든 결국엔 승리라는 목적을 이루는 데 최적화된 리더로 ‘샤라웃’ 받는다. 반면 같은 환경에서 각 구성원이 하고 싶은 요리의 개성을 모두 존중해 반영하려 했던 전통적인 모습의 리더는 중구난방인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더 이상 시청자들은 서바이벌 프로그램 내 토끼와 거북이의 경연에서 거북이를 응원하지 않는다. 콩쥐가 이기는 거시적인 서사보다는 빌런이 활개 치는 단 몇 분의 장면이 더 주목을 받는다. 리더를 선정할 때 착한 사람보다는 영악하지만 똑똑한 사람이 본인의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다. 이런 인식의 변화는 좁게는 함께 일하는 팀 리더를 대하는 자세부터 넓게는 한 국가의 지도자를 뽑는 선거에까지 적용된다. 청렴하고 윤리적이며 도덕성이 높은 후보와 그렇지 못하지만 나에게 이득이 되는 후보, 누구를 선택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