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영화제가 데려다 준 곳에는...

2024-11-14     신하연 편집위원
△ 사진= 신하연 편집위원

 진짜 영화인은 영화제 가서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닌 술을 마신다. 어느 감독님께서 말씀해주신 내용이다. 사람들이 영화제에 가는 이유는 다양하다. 어떤 관객들은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 어떤 감독들은 본인 영화를 틀기 위해, 어떤 관계자는 일을 하기 위해 갈 것이다. 그 다양한 이유들을 나는 다 알 수 없다.

 지난 1년간 영화를 공부하며 그리고 영화로 돈을 벌며 느낀 것은 영화를 사랑하는 다양한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영화제에 방문하는 것으로, 다른 누군가는 같은 영화를 수 없이 반복해 보는 것으로 그 마음이 표현된다. 방 안에서 OTT로 영화를 보고, 현장에서 영화를 촬영하기도 하며 끝없이 다양한 형태로 애정이 새어 나온다. 이들의 부정할 수 없는 공통점은 모두가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 다채로운 마음들 속 영화제를 향하는 나의 마음은 어떤 모양새일까. 특히 지난 달 다녀온 부산국제영화제는 어떤 낭만들로 내 마음에 자리해 있나.

△ 사진= 신하연 편집위원

 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 전당은 광안리와 해운대 사이에 위치해 있다. 부산의 친구가 말해주길 광안리는 남해이고, 해운대는 동해라 한다. 동백섬을 사이에 두고 갈라지는 이 두 바다는 단지 행정상 지리적 구분만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해안선과 나란히 있는 광안대교까지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는 광안리는 푸른 바다임에도 왠지 분홍빛을 담고 있다. 해운대 모래사장을 둘러싸고 있는 고층의 건물들은 푸른빛의 탁 트인 해운대이기에 조화롭다. 자그마한 동백섬을 사이에 두고 두 바다가 다른 빛깔의 모래알들과 바닷물을 띈다는 것은 꽤 흥미롭다. 동백섬이 둘을 갈라놓지 않았다면, 하나의 바다는 어떤 색을 띠었을까. 10월 해수욕장 폐장 안내판이 있음에도 가을의 부산 바다는 여전히 매력이 있다.

 부산의 먹거리도 언급 안할 수 없다. 서울에선 자주 먹지 않는 국밥이지만, 부산에만 가면 두세번씩 국밥집을 찾게 된다. 올해엔 돼지국밥 뿐만 아니라 소고기 국밥도 먹게 되었는데, 둘 중 무엇이 더 취향인가 이야기하던 중 재미난 발상으로 이어졌다. 사실 돼지국밥엔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있어 호불호가 갈릴 수 있고, 소고기국밥이 더 친숙하고 익숙해 먹기 쉽다. 그런데 돼지국밥하면 부산이라는 지역과 결부되어(소고기국밥도 경상도 지역 음식임에도), 난 왠지 돼지국밥을 더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요상한 마음이다.

 매년 같은 시기 같은 숙소를 잡고 영화제에 가다 보면, 마치 그 도시에 내 두번째 집이 생긴 듯한 느낌도 받는다. 주변의 골목들과 식당들, 버스 정거장은 지도 어플 속 표시를 보지 않아도 어느덧 내 머리 안에 위치해 있다. 나와 어느 연고도 없는 지역이지만 정이 들고, 서울에서도 가끔 떠올리곤 한다. 같이 다녔던 사람들과 제작년, 작년에도 먹었던 식당의 메뉴들. 매년 같아 익숙하면서도 조금씩 다르게 차곡 차곡 쌓이는 기억들. 반복과 변주. 고향을 사람과 공간에 대한 향수라고 폭넓게 정의할 수 있다면, 부산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영화제가 내게 만들어준 고향이 있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영화제의 영화들은 그만의 특수성을 간직하고 있다. 영화제에서 상영 후 정식개봉을 통해 일반 상영관에서 다시 만나게 될 영화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영화들도 많다. 오직 영화제에서만 만날 수 있는 영화들인 것이다. 영화제라는 장이 없었으면 내 눈에 담기지 못했을 시선들이다. 특히 단편영화를 만나는 것에 대해 영화제가 갖고 있는 의미가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단편은 장편과는 다른 단편만에 어울리는 주제와 호흡이 있고, 대부분의 영화 감독들은 단편을 거쳐 장편 감독이 된다. 단편 영화를 보면 미래의 장편 영화들이 함께 상상되고 기대되는 이유이다.

 계절의 변화를 오고 가는 영화제들로 체감한다. 전주는 봄과 함께해 늦은 한 해의 시작을 알린다. 부천과 제천은 여름의 열기 한가운데 있고, 부산은 선선한 가을바람을 데려온다. 11월말에 열리는 서울독립영화제가 끝나면 2024년 한해의 엔딩크레딧도 올라감을 느낄 것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부국제에 다녀온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느껴지기론 몇 달은 지난 것 같다. 사실 같은 시간대에 속한 일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일상의 연장선 중 일상과 유리된 시공간을 보내고 왔다. 영화제가 주는 낭만은 영화가 있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우연들(어쩌면 우연이라 여기고 싶은 필연들)이 영화제의 낭만을 충족시켜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