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칼럼] 하나의 유령이 대학가를 떠돌고 있다. ChatGPT라는 유령이.
하나의 유령이 대학가를 아니 전세계를 떠돌고 있다. ChatGPT라는 유령이. 바야흐로 인공지능의 시대이다. 2022년 11월 공개된 ChatGPT는 출시 일주일 만에 사용자가 100만 명을 넘게 되며 전 세계 사람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잘 알려져 있듯 ChatGPT는 오픈에이아이(OpenAI)가 개발한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봇으로, 사용자가 대화창에 텍스트를 입력하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물론 문서 및 논문 작성, 번역 작업까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완성도를 갖춘 결과물을 도출해낸다. 뿐만 아니라 작사, 작곡 등은 물론 그림 그리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의 업무 수행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이 언제나 그러하듯 인공지능의 발전은 그것이 지닌 편리함과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저작권 문제를 비롯하여 예술의 고유성에 대한 의문, 나아가 일부일지라도 인간과 비교할 때 우월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위협적인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ChatGPT를 비롯한 인공지능에 대한 열광과 이에 대한 위기의식은 이것이 가져온 혁신만큼이나 그 강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2022년 말 등장한 ChatGPT는 2023년 전반까지만 해도 대학 사회 일반에서는 지금과 같은 영향력을 미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학생들의 수업 결과물에서도 ChatGPT의 흔적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물론 이는 AI 관련 전공이나 첨단 학문과는 거리가 먼, 대학에서 주로 글쓰기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만나고 있는 인문학 전공자인 나의 기억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ChatGPT 서비스 시작 일 년이 될 즈음부터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각 학문 분야의 특성이 다양하니만큼 여러 수업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학업 수행이 권장되면서 당연히 내가 학생들과 만나는 강의실에서도 ChatGPT가 작성한 글쓰기 결과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각종 워크샵 및 학술논문들을 통해 인공지능의 활용을 어떠한 방식과 수준에서 조율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나 역시 한편으로는 이제 글쓰기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가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기도 하다.
최근 디자인 전공 선생님과 나눈 대화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에 따른 변화가 내가 인지하고 있던 것보다 한층 강력하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취업에 성공한 제자가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인즉슨 예전 같으면 여러 명의 디자이너들이 일정기간 프로젝트로 진행하던 작업을 이제는 인공지능이 하루도 걸리지 않아 수행하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업의 방향이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연마하는 것보다 잘 질문하는 법을 습득하는 것, 프롬프트(Prompt)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아직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요즈음 나는 매학기 새로운 학생들과 만나는 학기 초에 ChatGPT의 사용 경험 여부 및 그 효용성에 대한 판단, 다른 수업에서의 인공지능 사용 추천 여부를 묻는다. 물론 그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 직접적인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더라도 ChatGPT와의 대화 시간(?)을 종종 가진다. 나는 ChatGPT가 아직은 학생들보다 ‘덜 똑똑하다’고 믿는다. 그 녀석은 정형화된 글쓰기 패턴을 선호하고 꽤나 자주 잘못된 정보를 내포하고 있다. 물론 요즈음은 문체까지 모방 가능한 유료 버전 등을 통해 급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온라인 과제 제출이 일반화되었지만 그 이전 시절부터 나는 매학기 학생들의 특색 있는 보고서를 프린트물 상태로 따로 보관하곤 한다. 가끔 들추어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의 몇몇 글은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나에게 울림을 선사한다. 아직 나는 학생들의 다양한 개성이 담긴 글이 ChatGPT와의 협업을 통해 이루어진 전문적인 내용의 결과물보다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나의 신념은 격변하는 현실 속에서 언젠가는 혹은 조만간 변화할지도 모르겠지만 2024년 2학기 기준 강의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에게 부탁한다. ChatGPT의 도움보다는 여러분의 색깔이 충분히 담긴 글을 작성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