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비평] 모성적 가사노동과 ‘진짜 엄마’의 자격
“당신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어떤 엄마였는지 내가 다 까발리면 당신 괜찮겠어?”
불륜으로 이혼 소장을 받은 남자가 말했다. 동네 병원 의사인 남자와 달리 상대는 매스컴에도 알려진 유명한 이혼 전문변호사다. 지라시만으로도 질책 받는 스타변호사 차은경(장나라)은 남편 김지상과 비서 최사라의 불륜을 알고도 침묵했다. 소원해진지 오래인 남편을 너무 사랑해서도, 자신의 유명세 때문도 아니다. 은경을 배신한 두 사람이 “10년째 내 일 처리하는 손에 맞는 비서”와 “13년째 내 아이 케어하는 애 아빠”이기 때문.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은경의 인생에서 그들의 존재는 한 마디로 정리된다. “나 걔네들 필요해.”
대사 이면에 숨은 은경의 진심은 차치하고, 발화 자체에 주목해 본다. 사랑과 신뢰를 저버리고도 앞서는 ‘필요’란 무엇일까? 남편 김지상은 바깥일로 바쁜 ‘엄마 은경’을 대신해 가정과 딸 재희를 도맡아 케어했고, 비서 최사라는 ‘변호사 은경’이 오롯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옆에서 보조해 왔다. 그러니까 원활하고 안정적인 삶의 환경을 만드는 ‘매니징(managing)’이 파렴치한 그들의 필요인 셈이다.
‘돌봄’의 역할 수행
경영에서 주로 사용되는 ‘매니징’은 어원 그대로 관리하는 일을 뜻한다. 임금노동자로서 최사라가 수행해온 역할이 ‘업무 환경 관리’라면 김지상은 조금 다르다. 직무로서 매니저가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업무 전반을 운영하고 감독하는 것처럼, 가정이라는 조직 내에서도 우리의 삶을 경영하는—이를 테면 가사도우미와 운전기사에게는 맡길 수 없는 일들을 처리할 담당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산업의 발달로 노동의 장소가 가정과 사회로 분리되면서 임금노동과 격리된 가사노동은 생산적인 활동이 아닌 사적인 봉사의 성격을 갖게 되었고(문숙재, 1991), 오랜 시간 여성들을 ‘가정의 천사’나 ‘주부’로 호명하며 그 역할을 일임해 왔다. 하지만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되고, 아내를 ‘도와’ 음식물쓰레기를 대신 버려주는 다정한 남편상을 거치며 가정 내 역할 지형도 변화를 맞았다.
여성가족부가 조사한 2023년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30세 미만의 가구 56.4%가 남편과 아내가 똑같이 가사노동을 수행한다고 응답(뉴시스, 2024)했는데, 흥미로운 지점은 남편이 주로 수행하는 가사노동이 함께 놀아 주기나 훈육 같은 실행노동에 몰려 있다는 점이다. 식사나 외출준비, 준비물 챙기기 등의 생활 전반을 돌보는 기획노동은 높은 비율로 아내가 전담하고 있었는데 이는 여전히 남성 배우자의 역할이 외부에서의 개입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작중 차은경의 가정은 (대부분의 가사-실행노동을 외주화 했음에도) 남편 김지상이 돌봄-기획노동을 전담함으로써 특별한 지위를 획득한다. 그곳에서 ‘엄마의 자격’을 논하는 김지상의 대사는 가정 내 역할 수행이 젠더 규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방증이자, 주체화된 모성을 강요하는 폭력적인 사회의 단면이다.
‘반반결혼’의 시대에도 돌봄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재생산 주체인 여성의 전유물로, 동시에 모성의 근거로 작동하고 있다. 그렇게 일하는 여성들은 모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젠더 체계(조은, 2010) 아래 늘 ‘부족한 엄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