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예쁘지 않아도 괜찮아?

2024-11-14     오솔미 편집위원
△ 사진= 롯데시네마

 2018년 개봉한 영화『I Feel Pretty』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제작진이 만든 영화로 주목을 받았다. 패션센스도 좋고 성격도 매력적이나 본인의 외모가 콤플렉스인 주인공 르네. 소원을 들어준다는 분수대에 동전을 던지고 며칠 후 운동 중 넘어진 르네는 잠시 기절했다가 깨어나는데 외모가 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매우 아름다워졌다고 믿게 된다. 착각 속에서 자신감이 가득 찬 르네는 이전의 삶과 달리 당당한 자세로 행복하게 사랑도 커리어도 모든 것을 쟁취하는데, 시간이 흐른 후 착각에서 깨어난 르네는 이 자신감은 아름다운 외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 오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러나 외적인 변화보다 자기수용과 자신감에 대한 교훈을 전달하는 이 작품에서도 ‘예쁜 외모’에 대한 긍정은 놓지 않는다. 내용을 전개하면서 외모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외모 기준에 도전하는지, 오히려 강화하는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화장품 회사의 콜센터에서 일하는 르네가 본사를 방문했을 때 그곳의 직원에게 이렇게 말한다.

 “진짜 어떤 기분일지 너무 궁금해요. 누가 봐도 예쁜 기분, 온 세상이 나에게 마음을 여는 기분. 당신처럼 생겨야만 아는 거잖아요. 한 번만이라도” 

 본사에 있는 모든 직원이 한 명도 빠짐없이 예쁘고 마른 몸매인 반면에 그렇지 않은 직원은 콜센터에서 일하는 이 영화의 설정은 어쩌면 자기 수용이란 자신감과 연결된 것이 아니라 예쁜 외모를 가질 수 없으니 포기하고 안분지족하라는 뜻으로 느껴진다. 르네의 호들갑처럼 예쁜 사람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 환경은 달라지지 않는데 사회적 기준을 극복해 가는 과정은 없고 자기수용만 강조한다.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은 예쁜 것을 추앙하는 이 사회가 선민의식을 가진 채 건네는 위로처럼 들린다. 여기서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외적인 변화를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십상이며 예쁜 외모는 자신감을 만들어 내지만 자신감으로는 예쁜 외모를 만들어 내지 못함을 견고히 한다. 예쁘지 않은 르네가 자신감에 가득 찬 말을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라는 이 영화의 메시지와는 대비되는 장면이다. 이 영화의 포스터는 “예쁠 필요 없어. 나는 나니까!”라고 외치고 있지만 르네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역설적이게도 예뻐야만 한다고 강조하는 듯하다.

 현실과 미디어에서 예쁜 여자에 대한 찬양과 그렇지 못한 여자에 대한 냉정함의 태도를 지니는 것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채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특히 한번 정제된 영화에 비해 비교적 날것인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외모에 대한 가감 없는 표현들이 난무하며 최근에서야 외모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조심하고 있지만 적어도 예쁜 여자에 대한 찬양은 -어쩌면 집착은- 더욱더 심화됐다.

 이 영화가 개봉할 때쯤 스타벅스에서 논란이 됐던 사건이 불현듯 생각났다. 남성 직원의 용모 지적 민원에 “직원에게 화장을 강요할 수 없다”라는 답변을 단 사측은 똑같은 내용의 여성 직원 용모 지적 민원에는 “매장의 책임자에게 전달하여 직원의 용모를 점검하겠다”라고 답했다. 남녀 차별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 직원의 용모에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도, 성별에 따라 다른 답변을 내놓는 사측의 태도에도 기함하지 않을 수 없다.

 예쁘지 않은 여자에 대한 가혹한 채찍질과 함께 예쁜 여자에 대한 검열 또한 만만치 않다. 예쁘고 가녀린 몸매의 연예인들은 외모를 나노 단위로 뜯어서 분석 당하고 조금이라도 살이 찌거나 피부 상태가 좋지 못할 경우에도 자기관리를 하지 못한 죄로 처단당한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이 영화는 긍정적인 자기 인식과 자존감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지만, 이를 통해 오히려 외모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자존감의 문제를 외모나 자기 인식의 변화에만 의존하는 방식이 아닌, 내면의 가치나 다양한 외모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풀어갔다면 차라리 어땠을까.

 이 글을 쓰면서 여성에게 자꾸 ‘예쁘다’, ‘예쁘지 않다’라는 단어를 붙여야 하는 것이 불편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성은 -인간은- ‘예쁘다’ 또는 ‘예쁘지 않다’로 케이크 자르듯 이분법적으로 선을 그어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임을 르네에게도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