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수습기] 동경하는 세계로

2024-09-02     방민우 기자
▲방민우 기자

한글을 읽게 된 나이부터 글은 제일 재미있는 놀이였다. 그 사실은 곧 진리가 되어 스물하나가 된 지금, 나는 세상에서 글이 가장 좋다. 일기는 밀리지 않게 꼬박꼬박. 취미로는 필사와 영화평을. 길을 걷다 눈에 띄는 문구는 사진 찍기. 드라마를 볼 때는 자막을 꼭 함께 곁들여.

이렇게 좋아만 하던 글을 ‘동경’하게 된 순간이 있다. 일요일이었고, 내가 막 열아홉 살이 되던 참이었다. 신문의 8면까지 완독하며 기사 속 활자를 동경하게 된 순간은 요일까지 마음에 콕 박혀 지금까지 회자된다. 동경의 뜻이 두 가지라는 사실을 아는가. 1) 어떤 것을 간절히 그리워하여 그것만을 생각함. 2) 마음이 스스로 들떠서 안정되지 아니함. 열아홉의 그날부터, 나는 신문만을 생각하며 마음이 들떠 스스로 안정되지 아니했다.

동대신문의 수습기자는 동경하는 세계를 향한 첫걸음이라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어엿한 대학생 기자의 모습은 내게서 한 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컨텍은 낯설었고, 피드백은 두려웠으며, 내 기사에는 자아가 없어 보였다. 학교를 뛰어다니며 취재 아이템을 찾는 열정도 없었다. 그 대신, 화면에 부유하는 글자들을 초점 없이 바라만 보는 내가 있었다.

그렇게 두 번째 조판을 맞았을까. ‘뭐라도 써보자’는 마음으로 신문을 대할 수 있었다. 뭐라도 써보자며 타자를 두드리고 연필을 꺼낼 때면, 내 기사는 전혀 완벽하지 않은 ‘무언가’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내어진 한 글자 한 글자에는 내 자아가 확실히 담겨있다. 뭐라도 쓴 글은 뭐라도 되어 뭐라도 배울 수 있었다. 그 배움들은 켠켠히 쌓여 피드백을 기대하는 두려움 없는 마음과 학교 건물에 붙어있는 대자보는 꼭 정독해야 지나칠 수 있는 열정을 만들었다.

이처럼 이름 뒤에 기자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보낸 한 학기는 단단함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자’는 마음으로 살던 내게 신문은 피할 수 있어도 온 몸으로 부딪혀 보는 법을 알려주었다.

"어떤 어려움이 다가오더라도 생각하고, 수정하고, 다시 쓰면 이겨낼 수 있다"

더 이상 글을 ‘재밌는 놀이’라 할 수는 없다. 기사에는 사연이 있고 사람이 있고 내가 있기 때문에. 마냥 즐거운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즐겁지만은 않은 그 길을 꿋꿋이 걷고 싶다. 동경하는 세계로 가는 길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