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성수동, 활기와 상실이 공존하는 곳
SNS 내 성수동 언급량, 10년간 약 10배 증가 지역 상권의 변화로 기존 상인과 주민 내몰려 “젠트리피케이션 해결 위해선 상생 전략 필요해”
“이번 역은 성수(CJ올리브영)역입니다...” 오는 10월부터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은 CJ올리브영역으로도 불린다. CJ그룹이 서울교통공사의 ‘역명병기 유상판매사업’을 통해 성수역의 이름을 10억 원에 낙찰한 것이다. 지하철 역명이 10억 원의 가치를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정답은 바로 성수동의 매력에 있다. 청년들의 ‘핫플레이스’로 새롭게 떠오른 성수동, 그 매력을 찾기 위해 동대신문이 성수동에 직접 발걸음했다.
성수동, 젊음과 트렌드의 중심지가 되다
색다른 문화 공간을 찾아 나선 사람들은 카페로, 쇼핑몰로, 전시회로 발걸음을 옮긴다. 각양각색 문화 공간이 집합한 성수동은 2030 청년들로 연일 북적인다. SNS상에서는 성수동 뒤에 ‘핫플’, ‘맛집’, ‘카페’ 등의 해시태그가 함께 검색되며 젊은 층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 내 ‘성수동’ 키워드 언급량은 2015년 월평균 8,000여 건에도 못 미쳤지만, 최근 1개월간 언급량은 7만 6,300건에 달했다. 성수동의 유동 인구 또한 10년간 상승 곡선을 그렸다. 퇴근 시간 성수역의 일평균 승하차 인원은 2014년 8,786명, 올해 1만 8,252명으로 2014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이렇듯 성수동을 찾는 발걸음이 많아지면서 무신사·SM엔터테인먼트·쏘카 등 유명 기업의 본사들까지 성수동에 둥지를 틀었다.
성수동의 거리를 걷다 보면 단연 돋보이는 것이 있다. 바로 국내외 유명 브랜드의 ‘팝업스토어’다. 디올, 버버리 등 명품 브랜드부터 아모레퍼시픽, 젠틀몬스터 등 뷰티·패션 브랜드까지 우후죽순 성수동에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브랜드는 팝업스토어를 통해 이색적인 이벤트를 진행하고 고객들에게 신선한 경험을 선사한다. 지난 8월 진행된 ‘무신사X체이싱래빗’ 팝업스토어는 고객이 SNS 팔로우 이벤트에 참여할 경우 매장에서만 만나 볼 수 있는 콜라보 상품을 제공해 방문을 이끌었다. 또한 일부 품목을 반값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며 소비를 유도하기도 했다. 해당 팝업스토어 관계자는 “젊은 내국인 손님뿐만 아니라 2030세대의 외국인 손님들도 많이 찾아주신다”고 전했다. ‘팝업의 성지’로 자리매김한 성수동에는 최근 팝업스토어 전문 부동산까지 생겨났다. 이렇듯 팝업스토어는 청년들의 이목을 끌어당기며 성수동에 활력을 북돋우고 있다. 조이원(화공 24) 학우는 “팝업스토어는 해당 브랜드에서 온라인으로만 판매하는 제품을 매장에서 직접 시도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이목을 끄는 외관과 특색 있는 체험이 팝업스토어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전했다.
준공업단지에서 MZ세대의 성지로
‘한국의 브루클린’은 성수동의 또 다른 이름이다. 과거 낙후된 공장 지역에서 2030세대가 가장 많이 찾는 동네로 거듭난 성수동의 변화 과정은 뉴욕 브루클린과 매우 흡사한 양상을 보인다. 성수동의 지역변화를 연구한 김종성 한국교원대학교 교육혁신센터 연구원은 “1970년대 성수동은 서울의 대표적인 준공업지역이었으나, 이후 서비스업 중심의 상업이 발달하며 공업단지가 상업 용도로 전환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개발되며 상업가나 주거 지역이 고급화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어 김 연구원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장점은 물리적 환경 개선과 지역의 재활성화”라며 그 대표적인 사례로 ‘성수동대림창고갤러리(이하 대림창고)’를 언급했다. 대림창고는 빈 공장을 개조해 재탄생한 성수동의 대표적인 창고형 카페로, 붉은 벽돌의 외관과 넓은 실내 공간이 특징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으며 성수동에는 대림창고를 필두로 레트로 감성을 살린 공장·창고형 카페들이 즐비하게 자리 잡았고, 현재의 카페거리가 형성됐다. 평소 성수동을 즐겨 찾는다는 조 학우는 “주택가나 공장을 개조한 카페는 성수동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며 “성수동은 옛날 동네 같은 친근함과 20대가 좋아하는 트렌드가 공존하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지역 재활성화’인가 ‘둥지 내몰림’인가
지역 상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오는 젠트리피케이션에는 이면이 존재한다. ‘둥지 내몰림’이라고도 불리는 젠트리피케이션은 많은 이들을 지역 밖으로 내몰았다. 낙후됐던 지역이 개발돼 상승한 임대료를 기존 상인과 주민들은 감당하지 못한다. 또한 외부에서 유입된 상권에 기존 상권은 인지도가 밀리기 시작하고, 원주민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는 감소한다. 낯설게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결국 지역을 떠나게 된다.
현재 성수동의 상권은 마치 적자생존과 같다. 한때 성수동의 상징이었던 수제화는 경쟁에 밀려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서울시 상권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성수동 수제화 거리의 ‘신발’ 업종 점포 수는 2024년 1분기 기준 154개다. 이는 전분기 대비 약 6.1% 하락한 수치다. 또한 매출액 역시 동분기 기준 6,770만 원으로 전분기 대비 약 747만 원 감소했다.
15년간 성수동에서 수제화 공장을 운영했던 김형규 구두 디자이너는 “2009년 공장 오픈 초기에는 수제화 생산량이 많아 빠르게 안정화를 이루었고, 온라인 사업에도 확장세를 이어 나갔다”고 말했다. 또한 김 디자이너는 “현재 뜨거운 성수동과 달리 수제화 산업은 차갑다”고 전했다. 성수동은 핫플레이스로서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반면, 성수동의 수제화는 차갑게 얼어붙어 정체된 것이다. 그는 “수제화 산업은 2010년대 중반부터 저가의 수입 구두들과의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며 “초대형 창고나 공장이 힙한 카페나 대형 갤러리로 변하기 시작해 단기간에 성수동 수제화를 밀어냈다”고 말했다.
상생의 가치를 내세우다
그러나 젠트리피케이션을 단순히 문제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김 연구원은 “젠트리피케이션은 장단점이 뚜렷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그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무조건 막기보다 장점은 강화하고 단점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개발을 통해 지역을 재활성화하면서도 기존 상인을 내몰지 않는 ‘상생’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새로운 상권에 내몰렸던 성수동의 상인들은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김 디자이너는 “각각의 수제화 공장들이 조합을 만들어 하나의 브랜드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며 성수동 구두의 부활을 위한 노력을 전했다. 또한 그는 “구두 기술자들의 공임을 보장해 주고 젊은 기술자를 양성해야 한다”며 “성수동 수제화의 경쟁력을 위해 적극적인 홍보 등 지역 행정에서 수제화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때 서울 3대 시장 중 하나였던 성수동 뚝도시장 역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급격히 쇠퇴했다. 이에 지난 4월, 도시공간 기획 회사인 ‘소소도시’는 성동양조연합과 함께 뚝도시장에서 ‘팝업 파클렛’을 기획했다. 이는 뚝도시장 앞 도로변 주차장 공간을 활용해 휴식 공간을 마련하고 소규모 양조장 마켓을 개최한 프로젝트다. 매력적인 휴식처로 변신한 주차장과 각양각색의 주류들로 시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는 성수동 소상공인과 팝업스토어가 만나 상생의 가치를 보여준 프로젝트로, 저물어 가던 기존 상권의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포용도시’ 성동구의 지속 가능한 정책
성동구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해결을 위해 ‘포용도시’의 가치를 강조했다. 2015년, 성동구는 전국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조례를 제정하며 성수동 일대를 ‘지속가능발전구역’으로 지정했고 상생협약을 통해 정책을 강화했다. 지속가능발전구역에는 대기업과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신규 입점이 제한된다. 또한 상생협약은 지속가능발전구역에서 건물을 신·증축할 때 임대인이 임차인과 ‘임대료 안정 이행협약’을 체결할 경우 성동구가 용적률을 완화해 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성동구의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정책에도 한계가 드러났다. 상생협약은 임대인·임차인 간 자율 협약으로 강제성이 없다. 임대인이 편법으로 임대료를 올려도 지자체 측에선 이를 제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지난해 11월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관련 3법(상가임대차법, 부동산거래신고법, 지역상권법) 개정을 촉구했다. 정 구청장은 3법 개정안이 젠트리피케이션 관련 정책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가 뜨면 달이 진다. 지금 성수동에는 새로운 해가 떠올라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과거의 공장 부지를 재활용한 발상은 성수동을 ‘힙’한 지역으로 만들어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성수동에 머무르던 이들은 달이 지듯 몰락했다. 가파르게 상승한 임대료와 달라진 환경에 기존 상인들은 쫓기듯이 성수동을 떠났다. 이제 성수동에는 상생과 포용이 필요하다. 외부 상권을 유치하면서도 기존 상권의 정체성을 유지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는 비단 성수동뿐만 아니라 국내 모든 지역이 추구해야 할 가치다. 화려한 성수동의 거리 한 편이 더 이상 쓸쓸해지지 않도록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