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일상적 풍경 속에서 포착한 시의 순간, 한백양 시인
2024 신춘문예 동아일보·세계일보 시 부문 동시 등단 진정으로 두려운 대상이 있는 한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 “정답이 아닌 나의 답을 찾기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길”
매 새해 한국 문단을 밝힐 샛별을 발굴해 내는 장, 신춘문예. 우리대학 국어국문학과 04학번 한백양 동문은 2024 신춘문예 영예의 2관왕에 올랐다. 동아일보 시 부문 당선작 「왼편」과 세계일보 시 부문 당선작 「웰빙」을 통해 등단한 시인 한백양이 그려낸 시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동대신문이 명백이라는 벽을 넘어 써 내려가는 한백양만의 언어를 엿봤다.
Q. 안녕하세요, 한백양 시인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04학번 한백양입니다. 현재는 문예창작 입시 관련 일을 하며 시를 쓰고 있습니다.
Q. 시인님께서 문학의 길을 걷게 된 계기와 등단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A. 글쓰기 자체를 원래 좋아했습니다. 장르와 목적에 관계없이 글을 쓰는 동안에는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고, 나아가 저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상당히 무난하게 문학을 택했습니다. 다만 무엇을 쓸 것인가, 무엇을 쓰고 싶은가 하는 의문이 항상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 글쓰기의 나날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쓰는 것이 아닌,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등단까지 걸어 온 과정 역시 비슷했습니다. 저는 특출난 예술적 기질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등단을 위해 특별한 무언가를 진행하는 것을 외려 어색하게 여겨왔습니다. 그저 평소에 하던 대로, 하루의 루틴으로써 글쓰기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Q. 우리대학 재학 시절 창작 활동에 도움이 됐던 수업이나 활동이 있나요?
A. 동국대학교에서의 모든 수업은 제게 좋은 배움으로 남아 있어요. 그중에서도 현대 시론과 현대시작법 수업에서 배운 것들은 글쓰기의 난맥이 발생할 때마다 저 자신을 지탱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국어국문학과 시 분과 활동에서 학우들과 함께 시 공부를 했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서로를 도우며 힘든 시간을 함께 헤쳐 나갈 수 있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글쓰기를 이어 올 수 있게 해 준 것 같습니다.
Q. 2024 신춘문예 당선을 축하드리며, 당선을 알게 됐던 당시의 상황과 심정에 대해 들어보고 싶습니다.
A.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겠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때의 저는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동아일보에서 당선 연락을 받은 날에도 세계일보의 연락을 받은 날에도 제게는 그날의 일과 써야 하는 글이 있었고, 그것들을 온전히 마무리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었어요. 그래서 당선을 알게 됐을 때 감정의 변화로 인해 하루의 흐름이 어그러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평일에 무조건 시를 써야 하는데, 시를 쓰기 위한 감정적 기조를 유지하기가 어려워 머리를 싸맸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등단은 기쁜 일이지만, 그 기쁨이 완결인 것은 아니니까요.
Q. 시인님께 ‘시’란 어떤 의미인가요?
A. 제게 있어 시란 삶을 대하는 태도예요. 착한 사람이 되겠다거나 돈을 많이 벌 것이라는 결심처럼 저는 시 쓰는 것을 택한 것이죠. 저와 시는 분리돼 있되, 선택을 통해 이어진 관계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시’에게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진 않습니다. 사소한 일상에서도 시는 시이고, 저는 저일 뿐이니까요. 그러다가도 불쑥 ‘시 쓰는 사람’이 되는 것, 그러한 삶의 태도가 바로 제 시의 의미입니다.
Q. 자신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인님은 평소 어떤 글을 즐겨 읽으시나요? 또한 동대신문의 독자들을 위해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평소에 저는 다른 시인 분들의 시집이나 소설, 사회과학 및 교양서적에 더해 만화책도 많이 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독자의 입장에서 책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장르와 관계없이 독자 자신의 심리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독자분들께 우선 내 눈 앞에 놓인, 손에 닿는 곳에 있는 책을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이나 이성복 시인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와 같은 책을 추천 드리는 데 더해, 좋은 책은 역시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 내 곁에 있는 책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Q. 동아일보 시 부문 당선작인 「왼편」과 세계일보 시 부문 당선작인 「웰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독자들을 위해 시를 간략하게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A. 「왼편」은 오래된 빌라를 왼편에 둔 화자의 입장에서 빌라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갈등과 화해에 대해 서술한 작품입니다. 단순하지만 싸우는 와중에도 서로의 편이 돼 줄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미움과 애정이 혼재한 오늘날의 우리들을 다루고 싶었습니다. 이에 비해 「웰빙」은 혼자 살아가는 화자의 하루를 조감하는 내용으로, 삶의 어려움 속에서 우리가 과연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말하려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웰빙」 속 화자의 모습에는 비단 저의 입장뿐 아니라, 이러한 세계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을 내포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Q. 「왼편」과 「웰빙」은 일상적이고 현실감 있는 시어와 담담한 고백적 어조로 전해지는 울림이 인상적인 시입니다. 해당 작품들을 통해 담아내고자 했던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사실 시보다 중요한 것은 시를 읽는 독자입니다. 아무리 멋들어지게 쓴다고 한들, 독자가 없다면 시는 생명력을 얻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의 메시지를 제가 섣불리 지정하는 것이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제 손을 벗어나 독자 앞으로 나아간 시는 그 자체로 새로운 길을 걷는 거니까요. 그러나 작의로서의 메시지는 일단 살자, 행복이든 불행이든 온전히 내 것인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읽히지 않는다면 감사하고 또 죄송스러운 일이겠네요.
Q. 시인님은 영감을 주로 어디에서 얻으시나요? 또한 최근 시인님이 글을 통해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저는 기본적으로 대상을 관찰하고 묘사한 뒤 사유하는 흐름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 보면 반드시 대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들이 영감으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집중하고 있는 주제는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는 시대의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이 자라나 맞닥뜨려야 할 세계가 어떠할지에 대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슬픔도 기쁨도 불안도 일탈도 편집돼 있을, 강고한 규격 속의 아이들을 화자로 삼아보고 싶어요.
Q. 시인님께서는 동아일보 당선 소감에서 기쁨보다 두려움이 더 크다며, 두렵기 때문에 앞으로도 꾸준히 써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인님께 두려움이란 감정은 어떤 의미인가요?
A. 두려움은 두려움일 뿐,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다만, 두렵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들이 늘 우리를 빚어내는 것이죠.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은 무언가가 허물어질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늘 두려워할 것입니다. 시를, 독자들을, 낯선 질감의 모든 세계를 두려워할 것입니다. 조급해지거나 시야가 좁아질 때도 있겠으나 두려운 대상이 있는 한 사소한 감정들은 사라질 것이고, 그리하여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적당한 겁쟁이인 상태가 좋습니다.
Q. 시인님께서는 시를 쓰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이나 슬럼프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시나요?
A. 매번 좋은 시를 쓸 수는 없고, 아무리 좋은 시를 썼다고 생각하더라도 우리 앞에 놓인 작업은 다음 시를 쓰는 것임을 인정해야 해요. 저는 슬럼프가 발생했을 때 크게 두 가지 작업을 병행합니다. 하나는 기계적일지라도 오늘의 시를 쓰는 것입니다. 쓰고 넘어가는 것과 쓰지 않고 넘어가는 것의 차이는 극명해요. 특히, 스스로 신뢰를 만들기 위해선 모두 지워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무엇이든 써야 합니다. 지우는 건 결국 퇴고의 영역이니까요. 두 번째는 묘사입니다. 묘사는 한발 물러선 채로 내 앞의 대상을 봤을 때 가능합니다. 이것은 내가 지금 무엇을 보고 있으며 어떻게 보는지, 스스로를 해석하는 작업입니다. 이 작업들을 병행하다 보면 슬럼프가 오더라도 할 일은 정해져 있고, 자신에게서 확인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Q. 시인님의 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나는 명백한 것을 벽이라 부른다”는 문장이 떠오릅니다. 명백함은 넘어서야 하는 것이고, 명백하기에 극복돼야 할 것입니다. 시는 결국 질서에 대한 도전이자 명징한 사실 너머를 바라보기 위한 발버둥일 테니까요.
Q. 세계일보 당선 소감에서 시인님은 “좋은 시를 쓰고 싶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인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시’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떠한 시를 쓰고 싶으신가요?
A. ‘좋은 시’는 정서에 대한 독자의 호응과 공감이 잘 일어나는 시입니다.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말은 결국 독자와 시적 사유의 소통이 잘 일어나는 시를 쓰고 싶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시가 그럴 수는 없을 거예요. 시의 속성 중 하나는 ‘범선 속의 카나리아’라는 점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기압의 변화를 느끼고 그것을 사방에 외쳐대는 가냘픈 존재, 그것이 시의 주요 역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제가 쓰고 싶은 시는 결국 좋음과 예보 사이 어딘가를 끊임없이 헤매는 시라고 생각해요.
Q. 좋은 시를 쓰기 위한 시인님만의 노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시인님께서 글을 쓰는 과정에서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무엇인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A. 글을 쓰는 행위는 결국, 글로 작성해야 할 무언가가 내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기법과 작법은 생각보다 부차적인 문제이고, 보다 중요한 것은 작의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을 쓸 것인가, 무엇을 쓰고 싶은가’입니다. 이 고민은 우리를 평생 괴롭히겠죠. 다시 말해, 매번 새롭게 갱신되는 자신의 마음과 정서를 확인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를 위해서 우리는 자신이 지닌 인식의 통로에 대해 분해와 해체, 재구성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자신만의 관점을 지니게 될 것이고, 이것이 확고할수록 글쓰기 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또한 창작할 때 특별한 기준점을 삼으려는 행위를 오히려 지양하는 것이 좋아요. 작의 이상의 판단은 결국 작의를 흐리고, 나아가서는 논리와 서사의 허점을 발생시킵니다. 즉, 내가 떠올린 발상 속의 정황이 아닌 것을 배제하려고 노력할수록 의도의 투영이 쉬워진다고 생각합니다.
Q. 본명이 아닌 필명을 사용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독자들에게 ‘시인 한백양’은 어떠한 시인으로 기억되길 바라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기나긴 습작과 투고의 반복 중에서 스스로에게 낯섦을 부여하고 싶었기에 지금의 필명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어떤 시인으로 기억될지는 알 수 없겠지만, 바라는 게 있다면 단 한 가지입니다. 누구든 제 시를 통해 공감과 세계에 대한 이해의 영역을 넓힐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제가 잊히더라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앞으로의 계획이나 시인으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A. 일단은 시집을 내고 싶습니다. 그 외에는 시를 통해 독자와 소통하는 나날이 내내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에요.
Q. 끝으로 각자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우리대학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A. 대학 생활 중에 많은 것들을 경험해 보세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내 감정과 정신을 온전히 내던지며 열중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세요. 그러다 보면 결국 자신의 삶도, 삶에 대한 태도도 하나씩 갖출 수 있게 될 거예요. 때로는 도망치시고, 때로는 실패하십시오. 돌이켜 보면 20대는 잘 보내야 하는 시기가 아니라, 나만의 좋음과 옳음을 깨닫는 시기였어요. 지나친 일탈이 아니라면, 삶의 궤적은 탄력적으로 우리를 사회 속에 편입시킵니다. 그러므로 학과 활동도 동아리도 운동도 뭐든 좋으니, 자신의 앞에 놓인 활동에 집중하는 나날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서 배우는 모든 것을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시간이 되셨으면 해요.
사실은 앞선 인터뷰의 어떤 말도 중요하지 않아요. 인생에 정답이 있겠습니까? 정답이 아니라 나의 답을 찾기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삶의 모든 과정이 여러분들 각각의 해답이 될 거라고 확신해요. 얼마나 다행인가요? 답이 이렇게 많이 엉겨 있음에도 우리 사회는 그럭저럭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그러므로 여러분, 그냥 사십시오. 삶에는 살아 낸다는 것 이상의 명제가 붙지 않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