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방통위 공백 사태의 불편한 진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장기 공백사태를 맞고 있다. 방통위는 5인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합의제 국가기관이다. 대통령이 임명한 방통위원장과 상임위원 1명으로 구성된 2인 체제로 MBC의 감독권을 가지는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들을 졸속으로 임명함으로써 위원장이 탄핵소추되어 권한행사가 정지된 상태다. 합의제 기관으로 정상적인 직무수행이 어려운 상태인 것이다. 방송과 통신에 관한 국가기관의 공백이 정보사회가 최첨단으로 진전되는 상황에서 국민생활에 미칠 영향은 심대하다. 이 공백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다. 따라서 누가 이런 사태를 촉발했는지에 대해 엄중히 규명하여 책임을 물어야 한다.
먼저 방통위의 법적 위상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방통위는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기관이며, 방송의 자유는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방통위의 구성 및 운영의 제일원칙은 ‘독립성’이다.
방통위법은 방통위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독임제를 배제하고 5인 상임위원으로 구성되는 합의제를 채택하였다. 합의제를 채택하였는데 독임제처럼 운영하는 것은 위법이다.
또한 방통위법은 국가권력으로부터 방통위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탈정당적 전문가주의’를 배제하고 ‘정당중심 다원주의’ 체제를 결단하였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포함 2인을 임명하고 여당 추천 1인과 야당 추천 2인 등 3인을 국회추천으로 임명한다. 형식적으로 정당과 절연된 전문가로만 구성하게 되면 외부적으로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개인적 정파성에 의해 다양성이 결여된, 일방적으로 정파적인 구성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오히려 정당중심으로 합의제기관을 구성하면 다양성이 투명하게 확보되어 방통위 운영에 대한 민주적 책임을 더 확실히 물을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된 것이다.
한편 방통위법은 방통위원의 임기를 보장하고 위원의 결원이 생기면 “결원된 날부터 지체 없이” 보궐위원을 임명하여야 하고, 의결정족수를 출석위원이 아니라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정하여 방통위원 5인 구성체제를 유지할 것을 직·간접적으로 법제화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방통위법은 방송 기본계획 수립과 KBS 및 방문진 임원 임명 등 방송사 지배구조 구성에 관한 사항, 지상파방송사업자등의 허가·재허가 등 방송 규제 사항과 같이 방송의 독립성 보장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정부조직법의 적용을 배제함으로써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행정감독을 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현재의 공백 상태까지의 상황전개는 헌법과 방통위법이 무시되는 무법천지와 같다. 무엇보다 5인 총원으로 제대로 방통위가 구성되지 못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전임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장을 무리하게 면직하고, 야당추천 위원의 임명을 장기간 지체하여 정파적으로 일방적인 위원회 구성 상태를 만든 다음 무려 세 번에 걸쳐 위원장의 사임과 임명이 반복되는 비상적 상황에서 대행체제나 2인체제에서 방송의 독립에 직결되는 주요사항을 속도전처럼 의결하였다. 이러한 경과 자체가 방통위 공백 사태의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가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방통위를 권력자의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좌지우지 하는 것이 이번 사태의 근본원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