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독립서점, 책과의 우연한 만남을 팝니다
지난해 독립서점 884곳, 2015년 대비 약 9배 증가해 독서 모임·저자와의 강연 진행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독립서점의 위기, 올해 지역서점지원예산 전액 삭감돼
고즈넉한 오후, 포근한 종이 냄새를 따라 홀린 듯 들어선 골목 끝엔 독립서점이 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자 책방지기의 애정이 고스란히 묻어난 책들로 가득한 풍경이 보인다. 책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책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연결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는 독립서점. 동대신문이 서촌 거리와 충무로에 위치한 독립서점을 직접 방문했다.
독립서점의 매력을 펼쳐 보다
독립서점은 대형 자본과 유통망에 의지하지 않고 책방지기에 의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서점을 일컫는다. 판매량을 기준으로 대중성이 높은 베스트셀러가 일렬로 진열된 대형서점과는 달리, 독립서점에는 책방지기의 안목으로 선정된 책들이 자유롭게 배치돼 있다. 책방의 콘셉트를 결정하고 판매 도서를 선정하는 과정부터 북콘서트, 독서 모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기까지. 독립서점의 주인 책방지기는 서점의 공간 내 모든 요소를 자신의 감성으로 꾸며낸다.
최근 독립서점은 대형서점과의 차별점을 기반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주식회사 동네서점의 ‘2023 동네서점 트렌드’에 따르면 국내 독립서점은 2015년 97곳에서 2023년 884곳으로, 약 9배 증가했다. 독립서점을 자주 이용한다는 최가연(정치외교 23) 학우는 “최근 독립서점이 가진 특색 있는 콘셉트를 살펴보는 재미에 빠져 다양한 독립서점을 방문하고 있다”며 “아늑한 책방 안에서 타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독립서점의 큰 매력인 것 같다”고 언급했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공간, ‘서촌 그 책방’
지난 1일, 본 기자는 서촌 거리에 방문했다. 한옥 사이 아담한 책방 하나, 이곳에는 독립서점 ‘서촌 그 책방’이 자리하고 있었다. 책방에 들어서자 책방지기의 메모와 인덱스가 빼곡히 붙어 있는 책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는 서촌 그 책방의 큐레이션으로,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누구에게 필요한 글인지 책방지기가 직접 책을 읽고 표시한 짧은 글이다. 이곳을 찾은 손님들은 큐레이션을 살펴보며 자신에게 필요한 책을 구매할 수 있다.
최근 독립서점은 단순 책을 판매하는 공간만이 아닌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서촌 그 책방 역시 독서 모임, 저자와의 만남, 글쓰기 교실 등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독자와 독자의 연결, 독자와 작가의 연결을 가능케 한다. 특히 서촌 그 책방의 독서 모임은 13개 반이 편성돼 있을 정도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책방지기 하영남 씨는 “독서 모임은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 간의 소통을 위한 발판”이라며 “독서 모임 회원들은 책에 대한 각자 다른 해석을 공유하고,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며 책의 세계에 더욱 빠지게 된다”고 전했다. 독서 모임에 참여한 이들은 모임의 선정 도서를 집필한 저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저자와의 만남’도 가질 수 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인상 깊은 구절에 대해 저자와 이야기하거나 책을 쓰게 된 계기 등을 질문하면서 보다 깊은 독후 활동을 수행할 수 있다.
주인장의 취향과 안목으로 골라낸 특색 있는 책으로 채워진 이곳은 책방지기가 직접 읽어보고 그중 흥미로웠던 책만 판매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하 씨는 책을 직접 읽고 그 속에서 느낀 책의 재미와 반전 요소 등을 손님에게 소개하며, 손님이 서점을 떠나는 순간까지 즐거운 독서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 판매되는 책의 상당수는 국내 독립 출판물로 구성돼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형서점에서 베스트셀러를 구매함에 따라 독립 출판 업계의 입지가 점차 좁아지는 현시점, 국내 신생 작가들의 글이 세상에 더 알려지길 바라는 책방지기의 작은 소망이 반영된 것이다.
하 씨는 “독립서점에 방문한 사람들에게 책을 추천할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이곳 서촌 그 책방에서 다양한 이들과 자유롭게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책방지기와 손님, 책과 사람이 소통하는 공간인 서촌 그 책방. 우리는 책방지기의 정성으로 구성된 이 공간에서 책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책방에서 만나는 스페인, ‘스페인 책방’
본 기자는 충무로역 부근으로 이동해 ‘스페인 책방’에 방문했다. 이곳은 주로 스페인, 중남미와 관련된 책을 판매하고 스페인어권 문화를 소개하는 독립서점으로, 책방에 들어서는 순간 잔잔하게 들리는 스페인어 노래, 중남미를 떠올리게 하는 인테리어, 그리고 스페인 원서로 가득 찬 공간을 만나 볼 수 있다.
스페인 책방은 3층의 책방과 5층의 독서 공간 ‘살롱’이 이어진 구조로 운영된다. 3층 책방에는 스페인 원서를 포함한 스페인 관련 책과 굿즈, 그리고 전시 공간까지 마련돼 있다. 지난달부터 진행된 전시 ‘내 책상 위 스페인’을 통해 손님들은 스페인을 여행한 작가의 경험이 담긴 도자기 공예 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다. 스페인 책방은 책을 구매한 사람들에 한해 5층 독서 공간 살롱을 제공한다. 살롱은 거실이라는 의미의 스페인어로, 스페인 책방의 살롱에서는 다양한 문화 활동이 진행된다. 이곳에선 책방이 주최하는 스페인어 클래스, 작가와의 만남이 이루어지며 일일 공간 대관도 가능하다.
이 외에도 스페인 책방은 팟캐스트 ‘스페인 책방 라디오’를 진행하며 약 700명의 구독자와 소통하고 있다. 팟캐스트의 호스트 ‘에바’와 ‘다미안’은 스페인 책 또는 영화를 추천하거나 작가를 게스트로 초대하기도 하며 독립서점을 둘러싼 이야기를 전달한다. 스페인 책방의 또 다른 이색 문화 프로그램으로는 ‘일일 책방지기 체험’이 있다. 일일 책방지기 체험은 책방의 손님이 하루 동안 책방지기가 돼 책방을 직접 운영해 보는 프로그램이다. 책방지기 천민경 씨는 “독립서점을 좋아하는 손님들에게 책방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하고, 책방을 개업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실무적인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일일 책방지기 체험을 운영하게 됐다”고 전했다.
스페인 책방은 평상시에는 아담한 책방이지만 때로는 특별한 전시장으로, 때로는 라디오 부스로 변모한다. 천 씨에게 스페인 책방을 열게 된 계기에 대해 묻자, 그는 “10대 때 우연히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의 책을 읽고 스페인에 관심이 생겼다. 이후 스페인어를 배우며 자연스럽게 스페인 문화를 접하게 됐다”며 “개방적이고 다양성을 지닌 스페인 문화에 큰 매력을 느꼈다”고 답했다. 그는 “고등학생 때 우연히 읽게 된 책이 이 스페인 책방을 열도록 이끌었듯이, 적당한 시기에 적절한 책을 만나는 순간 인생이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스페인 책방에서는 책방지기 천민경 씨가 말하는 ‘우연’이 존재한다. 스페인 책방은 책과의 우연한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곳, 인생의 변곡점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독립서점의 부흥과 함께 찾아온 위기
특색 있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아 가는 독립서점에 하나의 위기가 찾아왔다. 올해 정부는 문화체육관광부 전체 예산의 0.2%였던 지역서점지원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의 지역서점지원예산(11억 원)으로 750개 이상의 문화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그러나 지원예산 전액 삭감으로 인해 도서 판매의 순수 수익만으로는 다양한 문화 사업을 운영하기 어려운 독립서점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된다.
책방을 찾은 손님들이 책을 구매하지 않는 문제 역시 존재한다. 서촌 그 책방의 책방지기 하 씨는 “책방은 책을 사러 오는 곳이어야 한다. 커피숍에서는 커피를, 빵집에서는 빵을 사는 것처럼 책방에서도 책을 사야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책이 아닌 책방 구경을 목적으로 독립서점에 들러 사진만 찍고 가는 것은 책을 구매하려고 책방에 온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책을 소개하고 싶은 주인에게는 안타까운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스페인 책방의 책방지기 천 씨에게 독립서점 운영에 있어 가장 힘든 점을 묻자, 그는 “책방이 상업 공간이라는 인식이 부족해 책방을 찾는 사람들조차 책을 구매하지 않고 구경만 하다 가는 점이 힘들다”며 책방 운영의 고민을 토로했다.
독립서점은 독립 출판물을 판매하는 책방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곳은 책방을 찾는 이들과 책방지기 간의 소통, 작가와 독자의 만남, 자신도 몰랐던 도서 취향의 발견, 이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공간이다. 저마다의 고유한 개성으로 빛나고 있는 독립서점. 독립서점이 그 고유의 빛을 잃지 않고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