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오랜만에 극장구경이나 가볼까
어느 동네가 살기 좋을까. 새로운 동네를 다니며 내 미래의 거주지를 종종 생각하곤 하는데, 독립예술 영화관의 존재는 그 동네를 꽤 애정이 가게 만든다.
독립예술 영화관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느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극장구경’이라는 말이 제법 잘 어울리는 영화관들이랄까. 통일된 분위기를 갖고 있는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사실 어느 지점을 가나 특색 있는 공간경험을 하긴 어렵다.
하지만 독립예술 영화관은 가는 길부터 여행자의 심정이 된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대게 유동 인구가 많은 번화가 대로변에 있는 반면, 독립예술 영화관은 그보다는 조금 한적한 동네 한편에 있곤 한다. 영화관 덕에 새로운 동네의 골목골목을 구경하며 나름의 여행자가 되는 것이다.
이들 영화관은 본상영에 앞서 상업광고 대신 다른 영화의 예고편을 보여준다. 이 같은 감정의 예열은 영화를 더 짙고 생생하게 마음속으로 다가오게 해준다.
나는 이런 영화관들이 단지 시네필들의 장소가 아닌, 더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내가 애정하는 독립예술 영화관들을 소개해 본다.
▲ 에무시네마
경복궁역에서 내려 언덕을 조금 오르다 보면, 도심 속 한적함을 느낄 수 있다. 그 기분 좋은 한적함 사이에 에무시네마가 자리하고 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도망친 여자>에서 김민희가 영화를 보던 곳이기도 한 에무시네마는 영화인들의 아지트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1층 북카페에선 시네마앤카페 메뉴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는 상영 중인 영화에서 한 편을 선정해 그와 어울리는 특별한 음료를 판매하는 행사이다. <비포 선라이즈> 속 남녀 주인공과 함께 ‘비엔나 커피’를 마시고, <가여운 것들>의 벨라가 와인잔으로 축배를 들 때 같이 ‘벨라 보드카’를 들면 한층 더 영화로운 경험이 되지 않을까.
한가지 팁을 주자면, 에무시네마로 가는 길에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지도를 볼 것을 권한다. 소중한 보물 마냥 숨겨져 있는 에무시네마여서, 약간의 미로를 뚫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 라이카 시네마
연희동 주민들은 좋겠다. 이렇게 세련된 영화관이 집 근처에 있어서. 연세대 서문으로 나와 연희동 골목을 걷다 보면 4층 높이의 깔끔한 외관을 갖은 건물이 보인다.
라이카 시네마는 우주로 나간 최초의 개 라이카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상영관층도 2층 카페도 우주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단관극장이지만 상영하는 영화는 다양하고 시설 또한 훌륭하다. 예술영화관 중 유일하게 돌비 사운드를 구현하며, 앞뒤 좌석 간 넓은 레그룸을 갖고 있다. 키가 190을 넘지 않는 사람은 다리를 쭉 뻗어 앞좌석을 차고 싶어도 찰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영화 공부를 함께 하는 친구들과 라이카 시네마에 처음 갔다. 영화 스터디를 하고, 영화 이야기를 하며 같이 영화를 본 그날의 경험은 정말 Like a cinema(라이카 시네마)라고 할 수 있겠다.
▲ KU시네마테크 (쿠씨네)
초록색이 무성한 건국대학교의 캠퍼스 안 KU시네마테크(쿠씨네)가 있다. 매표소가 있는 작은 로비엔 영화 팜플렛이 가득하다. 높은 층고의 천장은 영화 장면들이 담긴 포스트 카드로 잔뜩 꾸며져 있다. 눈이 닿는 모든 곳에 영화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장소이다.
매달 진행되는 쿠씨네 무비클럽이 유명한데 독립예술영화를 함께 관람하고 안팎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다. 영화가 아니었으면 나누기 힘든 대화를 트이게 해준다는 것은 영화의 순기능 중 하나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관이 이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관객 경험인가.
또한 쿠씨네만의 세븐쿠폰이 있다. 일곱 개의 도장을 모으면 영화 한 편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쿠폰이다. 영화 감상 후 짧은 리뷰를 쓰면 스탬프를 하나 더 찍어준다. 재밌는 점은 관람한 영화마다 스탬프 모양이 다르다는 것이다. 마치 어린 시절 착한 어린이 스탬프를 받는 기분이 든다. 착한 시네필 스탬프로 보면 될까.
극장 구경이나 가볼까. 이 글을 읽고 한 명이라도 이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OTT의 등장과 다른 놀거리들이 쏟아지는 요즘이지만, 이들 영화관엔 항상 관객이 있고 영화가 있다. 티켓도 저렴하고, 영화 굿즈를 주는 회차도 있다. 이런 나의 설득 아닌 설득이 그저 어느 시네필의 구구절절한 애원처럼 비치질 않길 바란다.
누구와 보러 가느냐, 어디로 보러 가느냐, 영화 앞뒤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같은 영화이더라도 다른 영화로 기억될 수 있다. 이렇듯 영화가 기억되는 방법은 다양하다. 기분 좋은 계절에 멀리 여행 가지 못하더라도, 근처에 있는 극장 구경 한번 가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