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침묵의 사계, 기후 위기 한가운데 서다
지구 평균 기온·해수면 온도 역대 최고치 기록 기후 변화로 수해 증가 및 열대 질병 확산 우려돼 “기후 공약 실효성 발휘될 수 있도록 정치권 노력 필요”
꽃이 개화하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봄이면 많은 이들은 봄꽃을 만끽할 수 있는 축제로 향한다. 그러나 지난달, 벚꽃 개화 시기가 예상보다 늦어져 많은 지자체가 ‘벚꽃 없는 벚꽃 축제’ 사태에 곤욕을 치렀다. 최근 몇 년 사이 기후 변화와 이상 기온으로 인해 계절의 경계가 흐려지며 더는 생기 가득한 봄이 찾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이제는 더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생생한 현실로 닥쳐온 기후 위기에 대해 알아봤다.
고열 앓는 뜨거운 지구
지난 3월 지구 평균 기온은 14.14도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이전 최고치인 2016년 3월보다 0.1도 높은 수치로, 지구 평균 기온은 10개월 연속으로 사상 최고 기온을 기록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발생하는 열의 90%가량을 흡수하는 바다 역시 뜨거워지고 있다. 유럽연합(EU) 산하 기구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의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3월 전세계 해수면 온도는 평균 21.07도로 역대 최고 온도였다. 기후학자들은 고온 현상이 지속된다면 지구의 기후는 임계점을 넘어 결국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 경고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이상 기온 현상이 나타나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상청이 지난달 29일 공개한 ‘2023년 이상기후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해 국내 연평균 기온은 13.7도로, 전년 대비 0.8도 상승했다. 이는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후 가장 높은 기록이다. 해당 일 기온과 평년 기온 간 차이가 상위 10%에 드는 현상인 이상고온이 발생한 날은 작년 한 해 57.8일에 달했다. 오충현 우리대학 바이오환경과학과 교수는 “국내 평균 기온은 전 세계와 비교했을 때에도 상당히 빠른 속도의 상승폭을 보이고 있다”며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오 교수는 “평균 온도 상승으로 날씨가 온난해지며 기후대가 300km 가까이 북상했다”고 덧붙였다. 기후대의 급격한 이동으로 국내 식물이 기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나무가 말라 죽고 농작물의 재배와 수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생태계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기후 위기가 계속해서 심화된다면 인간의 삶에 미치는 피해도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 위기, 드리운 재난의 그림자
2022년 태풍 ‘힌남노’로 인해 전국적인 침수 사태가 벌어지며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지하철 역사 내부에 물이 차올라 열차 운행이 지연되거나 중단됐고, 도로의 침수된 차량에 운전자가 갇히는 사고가 접수되기도 했다. 또한 포항에서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침수돼 대피하던 주민 9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상 기후로 인해 태풍의 강도가 세짐에 따라 기상 재해가 야기할 피해 규모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오 교수는 “1910년대에 비해 현재 강수량은 약 200mm 증가했다”며 “문제는 비가 안 오는 날이 과거보다 약 30일가량 증가했다는 데서 온다”고 전했다. 강수량은 증가했으나 비가 오는 날은 줄어들었다는 것은 곧 한 번에 많은 양의 비가 내려 폭우와 홍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강수 패턴에 맞게 설계된 도시에서는 강수량의 변화로 터널과 지하도가 침수하는 등 도시형 홍수 문제가 빈번히 나타날 수 있다. 실제로 지난달 16일 두바이에서는 1년 치 강수량에 달하는 비가 12시간 동안 내려 도로가 잠기고 공항이 폐쇄되는 등 도시가 마비되기도 했다. 두바이의 사막 기후에 맞춰 설계된 도로 배수 시설이 갑작스러운 폭우를 감당하지 못해 피해 규모는 더욱 커졌다.
또한 기상 이변은 다양한 질병의 원인이 된다. 전세계적으로는 기후 변화로 열대성 질환의 매개체인 모기의 서식지가 확대돼 말라리아 등 전염병의 발생 가능성이 증가했다. 기상 이변으로 인한 폭우로 홍수가 발생하면 오염된 물이 범람해 장염과 콜레라와 같은 수인성 질병의 감염 위험이 커진다. 오 교수는 “상하수도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제3세계 국가들은 오염된 물로 인한 수인성 질병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설치된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은 수인성 질병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지속적인 기온 상승으로 국내 여름철 기후가 열대 지방과 비슷한 수준으로 변화한다면, 국내에서도 열대 질병이 확산돼 심각한 피해를 낳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녹색 사회를 향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다
현재 세계 195개국은 파리협정(Paris Agreement)에 가입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지구 평균 온도를 낮추려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5년 파리협정에 가입해 변화하는 기후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2021년 9월 국회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했다. 탄소중립기본법은 ‘2050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며 ‘정의로운 전환’과 ‘녹색성장’을 그 기조로 둔다. 정의로운 전환이란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 피해를 볼 수 있는 지역이나 사회적 취약 계층을 보호하는 정책 방향성을 뜻한다. 오 교수는 “기후 위기에 있어 취약 계층과 그 외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 대해 국가적 차원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정부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정부와 지자체는 탄소중립기본법에 따라 기후변화영향평가와 탄소중립기본교육 등 다양한 시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월 서울시는 시민들의 대중교통 및 공공 자전거 이용을 확대하고자 무제한 대중교통 통합 정기권인 ‘기후동행카드’를 선보였다. 이는 지난달 5일 누적 판매량 100만 장을 돌파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기후동행카드로 약 3,600톤의 온실가스가 감축된 것으로 분석됐다.
한편 여러 정당은 지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앞서 다양한 친환경 공약을 내세웠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주요 환경·기후 공약으로 ▲차세대 소형모듈원전(SMR) 육성 ▲2027년까지 기후대응기금 2배 확대 ▲기후특위 상설화 등을 발표했다. 이어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재생에너지 전력시설 확충 ▲RE100활성화 ▲기후에너지부 신설 등을 발표했다. 이에 박종권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대표는 “22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바로 기후 위기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거나 개정해야 한다”며 국회의원의 역할을 강조했다. 친환경 공약의 실효가 발휘되기 위해선 정치권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의 숙제, ‘기후 재앙’ 막기 위해
기후 위기가 전지구적 문제로 부상하면서 기업 현장에선 ESG 경영이 확산되는 추세다. ESG란 환경(Environment)과 사회(Society), 지배구조(Governance)를 합성한 단어로, ESG 경영은 환경을 보호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목표로 둔다. LG전자는 ESG 경영에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 대표적인 국내 기업 중 하나다. 지난 7일 LG전자는 한국환경공단, E-순환거버넌스와 함께 ‘소형 2차전지 수거·재활용 업무협약’을 맺으며 순환경제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협력했다. 이에 이달 7일부터 다음 달 30일까지 고객으로부터 무선 청소기 폐배터리를 수거하고 새 배터리 구입 시 할인해 주는 ‘배터리턴’ 캠페인이 진행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의 친환경 혁신 이면에는 역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스타벅스의 텀블러가 있다. 스타벅스는 친환경 마케팅으로 다양한 텀블러를 주기적으로 출시하지만, 그 양이 과도하다. 실제 스타벅스가 2019년부터 2022년 9월까지 판매한 텀블러는 약 1,126만 개였고, 그 종류는 연평균 448종이었으며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출시되고 있다. 이는 환경보호 효과는 없지만 친환경을 위장하는 그린워싱(Greenwashing)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친환경의 역설에 대응하기 위해선 개인의 인식을 제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 교수는 “친환경의 역설과 그린워싱으로 나타나는 역효과가 존재하긴 하지만 소비자가 스스로 친환경 제품 사용을 습관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개인이 그린워싱에 대해 분별하는 능력을 갖추고 친환경 실천 능력을 함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환경 교육을 확대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국민이 친환경적 감수성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서 호머 심슨은 아들에게 “올해는 너의 남은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거다”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웃고 넘어간 농담이었지만, 지금은 웃을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왔다. 이제 기후 위기는 나중이 아닌 바로 지금의 문제다. 미래세대가 아름다운 사계절의 정취를 즐길 수 있도록 모두의 관심과 실천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