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리뷰] 김정희, 「1465년작 관경16관변상도와 조선초기 왕실의 불사」

2024-05-12     장미희 편집장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조선초기 한성부(漢城府)에는 흥덕사, 내불당, 원각사 등 많은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사찰에는 당연히 불화가 봉안됐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태조가 창건한 흥덕사 정전에 공민왕이 그린 <석가출산도(釋迦出山圖)>가 걸려있었다는 기록을 제외하고는 조선초기 한성 소재 사찰의 불화 상황을 전하는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과 여러 문헌에는 조선초기 불화 제작을 알려주는 기록이 있고, 이 시기에 제작된 불화 여러 점이 현전한다. 조선초기라면 억불숭유로 불교미술이 쇠퇴했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현전하는 조선초기 불화를 살펴보면 이 시대에도 여느 시대 못지않게 수준 높은 불교미술이 제작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헌 기록에 남아있거나 현존하는 조선초기 불화의 특징은 대부분 왕실과 관련해 제작됐다는 것이다. 왕실과 관련된 조선초기 불화 중 주목되는 작품 중 하나는 1465년작 <관경16관변상도>이다.

  <관경16관변상도>는 고혼(孤魂)이 아미타극락에 환생하는 방법을 언급한 『관무량수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불화이다. 『관무량수경』은 인도 마가다국에서 일어난 왕위찬탈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인도 마가다국의 아사세 왕은 부왕(빈비사라왕)과 모후(위데휘 부인)을 감금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고, 유폐 생활을 하던 위데휘 부인은 부처님에게 괴로움이 없는 세계를 보고자 기원한다. 그러자 부처님은 시방세계의 모든 불국정토를 보여줬고 위데휘 부인은 여러 불국정토 중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염원한다.

  『관무량수경』의 내용을 그린 것이 바로 관경변상도인데, 여기에는 ‘관경서분(서품)변상’과 ‘16관변상(본변상)’의 두 종류가 있다. 전자는 『관무량수경』 서분의조(序分義條)에 설법된 마가다국 왕사성의 비극을 그린 것이고, 후자는 아미타여래의 극락정토를 관상(觀想)하기 위한 16가지 관상법에 대한 내용을 도해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1465년작 <관경16관변상도>는 16관변상에 해당한다. 중국, 일본, 우리나라 등지에서 아미타정토 관련 그림이 많이 조성됐다. 16관변상의 경우 중국 북송초 영파와 항주에서 천태정토교를 주도한 지례, 준식 등이 관경을 설하는 관상을 중시해 16관게송을 만들어 유포한 것과, 1099년 영파의 연경사(延慶寺)에 16관당을 창건한 것이 중요한 계기가 돼 널리 제작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아미타신앙의 성행과 함께 천태종과 밀교에서 정토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되며 관경변상도가 많이 조성됐고, 관경변상도의 제작은 조선초기까지 이어졌다.

  일본 교토 지은원에 전하는 1465년작 <관경16관변상도>도 태종의 명복을 빌고 모든 고혼들이 극락왕생하기를 바라며 발원됐다. 효령대군, 월산대군, 영응대군부인 등 왕실 인물과 일반인, 비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시주자에 의해 조성됐으며, 도화서 화원인 이맹근이 그렸기 때문에 작품의 제작지가 도화서가 위치했던 한성부로 추정된다는 점도 주목된다. 1465년작 <관경16관변상도>는 지금까지 알려진 조선초기 불화 가운데 제작연대와 시주자, 작가 등 제작에 관련된 내용이 확실하게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고려시대 불화 양식을 계승해 ‘궁정양식’을 이뤘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