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언론의 낮은 젠더 감수성, 보도 윤리는 어디에
지난 7월, 인하대학교 재학생 A씨가 동급생을 성폭행한 뒤 숨지게 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경찰은 가해자 A씨를 긴급 체포해 구속 수사했으며, 9월 13일에는 첫 공판이 열렸다.
포털 사이트에 등록된 최초의 기사 헤드라인은 “인하대서 여성 옷 벗은 채 피 흘리고 쓰러져… 경찰 수사”였다. 다수의 언론이 뒤따라 “탈의한”, “나체로”, “속옷 발견” 등 피해자가 발견된 당시의 상황을 선정적으로 묘사한 보도를 쏟아냈다. 사건의 기사화 단계부터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속보 경쟁을 시작하기 바빴다. “알몸으로 발견된 여대생, 숨진 채 발견” 등 피해자의 신상을 두고 여대생이라는 성차별적 용어를 사용한 언론도 부지기수였다. “성폭행 거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가 기사를 수정한 언론도 있었다. 피해자의 만취 상태를 강조한 기사에는 “늦게까지 남자랑 술을 마신 게 문제”라며 행실을 운운하는 댓글이 달렸다. 피해자가 조심하지 않았다는 개연성을 부여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이루어졌다. 방어에 취약한 피해자의 상태와 범죄의 발생은 별개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에 대한 성적 모욕, 명예 훼손 등 피해자에 대한 공격이 쏟아졌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해당 보도를 전수 분석한 결과 68개의 언론사가 헤드라인에 선정적인 표현을 사용했으며, 42개의 언론사가 피해자의 신상을 드러낸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반복된 지적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중심 서술과 선정적 이미지, 자극적인 상황 묘사, 피해자를 배려하지 않은 헤드라인 등 잘못된 보도 관행을 되풀이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한국기자협회는「성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을 통해 “언론은 가해자 중심적 성 관념에 입각한 용어 사용이나 피해자와 시민에게 공포감과 불쾌감을 주고 불필요한 성적인 상상을 유발하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제시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와 여성가족부가 2022년 4월 개정한 「성폭력·성범죄 사건 보도 공감 기준 및 실천 요강」 역시 “가해자의 가해 행위를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묘사하거나 사건의 심각성을 희석하는 보도를 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성범죄 행위를 필요 이상으로 묘사하는 것, 가해 행위를 ‘몹쓸 짓’, ‘나쁜 손’, ‘파렴치’, ‘더듬더듬’ 등으로 표현하는 부적절한 용어 사용도 실천 요강에 위배된다. 나열된 용어들은 성폭력, 성추행이라는 명확한 범죄 용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해자를 ‘악마’, ‘짐승’ 등으로 표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다수의 기사들이 성범죄를 모호하게 표현해 심각성을 축소하고 있다.
분명하게 명문화되어 있는 실천 요강들이 무의미해지고 있다. 부적절한 헤드라인과 피해자가 전시되는 보도를, 우리는 언제까지 봐야 할까. 큰 문제의식 없이 반복되고 있는 보도 관행이 아니라, 피해자의 권리를 우선하고 성범죄를 명확하게 기술하는 보도가 필요하다.
올바른 젠더 관점에서의 게이트 키핑 과정 역시 중요하다. 특히나 뉴스 통신사 기사는 해당 통신사 뿐 아니라 계약을 맺은 다수 언론사를 통해 다시 보도되는 만큼, 더욱 엄밀한 보도 윤리 준수가 필요하다. 언론의 윤리 강령과 보도 준칙에 위배되지는 않는지, 혐오와 차별을 되풀이하거나 강화하지는 않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속보 경쟁으로 인한 선정적 보도가 아닌 가해자의 법적 처벌, 성범죄 예방 및 해결을 위한 공론의 장이 조성되기를 바란다. 사회 전체의 젠더 감수성 점검을 위해서는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