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빵과 장미를 달라
인류는 본래 절반만이 투표권을 소지할 수 있었다. 1776년 미국에서는 독립 선언문이 작성된다. 민주주의적 혁명의 성격을 가진 이 선언문에는 자유, 평등과 인민 주권의 확립을 이루려는 시도가 담겨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로부터 70년이 흐른 1848년, 미국 뉴욕 세네카 폴스에서는 여성 인권 대회가 열린다. 여기서 발표되는 ‘소신 선언’에서는 남성이 여성에게 행하는 16가지의 억압이 담겨 있다. 오래 전 그들의 독립 선언문에는 여성이 없었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여성의 참정권은 1920년 8월에서야 인정된다. 프랑스 역시 대혁명 시기를 거치며 자유와 권리를 찾게 되었지만 여성은 논외였다. 여성은 인간, 그리고 시민의 범주에 속하지 못했다. 프랑스 시민 운동가 올랭프 드 구주는 혁명 시기에 여성에게도 참정권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혁신적인 주장을 펼쳤지만 결국 처형되고 만다. 그는 죽기 직전 “여성이 단두대에 올라갈 권리가 있다면, 연단에 오를 권리도 가지고 있다”는 말을 외쳤다. 그 후 프랑스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되기까지 15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산업혁명 시대였던 18세기에도 여성은 여전히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이기에 정치 문제를 논할 수 없었다. 결국 남성들과 동등한 참정권을 요구했던 영국 여성들은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냈다. 그들은 권리를 찾기 위해 전투적으로 싸웠다. 창문을 깨고 폭탄을 던지고 건물을 불태웠다. 이들은 ‘서프러제트’(Suffragette) 여성사회정치연합(WSPU)이었다. 이 급진파 여성 시위대는 법을 어기고 시위를 한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되거나 구금됐다. 애초에 법 안에는 여성이 없었기에 그들이 말하는 ‘범법’이란 남성의 세계를 탐하려는 행동을 뜻하는 것이었다. 1913년 에밀리 데이비슨은 경마 대회에서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조지 5세의 말을 향해 달려들며 “여성에게 투표권을!”이라 외쳤고, 경주마와 충돌한 나흘 뒤 사망했다. 수많은 희생 끝에 1918년, 서른이 넘은 ‘자격’ 있는 여성들의 참정권이 인정되고 더 긴 투쟁 끝에 1928년 모든 여성이 참정권을 얻게 되었다.
“빵과 장미를 달라” 구호는 113년 전 미국 여성 노동자들의 구호였다. 빵은 생존권, 장미는 참정권을 의미한다. 지난 4월 7일 2021년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가 진행됐다. 모든 투표가 소중하지만 내겐 특히나 이번 보궐선거가 아주 중요했다. 가해자의 죽음으로 인한 보궐선거였고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투표를 하면서 내게 주어진 참정권에 대해 생각했다. 너무 많은 여성들의 피와 목소리가 담긴 투표용지였다. 그들 덕분에 2021년을 살아가는 나는 투표를 통해 피해자와 연대할 수 있었다. 아직 더 많은 것들이 바뀌어야 한다. 이제는 우리의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