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화와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대선 주자들의 대북정책을 진단하다
대학원 신문(이하 대) :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이번 대선과 향후 정책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이번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먼저 자기소개를 간단히 부탁한다. △ 좌담회가 끝난 뒤 담소를 나누고 있는 권태상씨(왼쪽)와 박상원씨(오른쪽)
권태상(이하 권) : 동국대 북한학과 박사과정 권태상이다.
박상원(이하 박)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사상을 전공하는 박상원이다.
대 : 대북정책에 관한 개괄적인 이야기를 먼저 해주었으면 좋겠다.
권 : 해방 이후 48년부터 대북정책은 북진 통일 정책이었다. 한국전쟁에서 보듯 남과 북은 서로 전쟁을 통해 통일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전쟁 이후에는 유엔의 감시 하에 남북한 총선거를 공식적인 대북정책으로 삼았다. 4.19 이후 민간 통일 운동이 나타났지만, 당시 장면정부는 여전히 유엔 감시 하의 남북한 총선거를 대북정책으로 유지했다. 5.16쿠데타 이후에는 선개발 후통일이라는 노선을 내 건 경제개발정책으로 인해 대북정책이 경제정책보다 후순위가 되었다. 1970년대 닉슨독트린 이후 닉슨이 중국을 방문하는 등 데탕트 분위기가 되면서 7.4남북공동성명이 나오게 되었다. 이 성명에서 통일의 3원칙을 최초로 남북대화를 통해 합의하였다. 이후 남한은 경제성장을 이룬 자신감을 가지고 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구체적인 남한의 통일방안인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공식적으로 제시했다. 이후 노태우 정부 들어서부터는 탈냉전이 시작되었고, 이런 상황 속에서 북한의 동맹국이었던 중국과 소련이 남한과 수교를 맺게 된다. 중국과 소련이 남한과 수교를 시작하자 북한은 위기의식이 느끼기 시작했고 이 위기의식이 남북기본합의서라는 남한과의 교류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이를 이어 받아 김영삼 정부에서는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순 없다’라고 언급했다. 활발한 대북 접촉을 시도하게 되었고 남북 정상회담도 합의하였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런 사망과 북한의 제1차 핵위기로 인해 남북관계가 굉장히 꼬여버렸다.
김대중 정부는 남북화해협력정책을 추진한다. 2000년 6.15 공동선언과 활발한 대북사업이 시작되었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점은 연평 해전에도 불구하고 남북대화는 계속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전 정권의 대북정책을 이어받아 지속시켰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임기 초기에 김대중 정부 당시의 2000년 정상회담 관련 대북 송금 특검과 2차 핵위기가 2004년에 다시 발생하면서 상황이 복잡하게 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남북교류협력은 기존의 틀을 유지하되, 북핵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정상회담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 시기에도 개성공단이 확대되고 개성관광이 시행되고 남북 철도를 연결하는 등 남북교류는 지속되고 확대되었고, 정상회담은 임기 말인 2007년이 되어서야 가능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가 김대중, 노문현 정부가 진행했던 대북정책의 흐름을 이어받아 북한과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대북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북한은 붕괴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화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을 붕괴시키기 위해서 남북교류협력을 굉장히 경계했고 가급적이면 더 이상 새로운 지원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책 노선을 유지했다.
박 :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기본적인 대북정책은 통일의 3대원칙인 자주, 평화, 점진이 기반이다. 근데 이 대북정책은 사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진행이 되어온 게 아닌가 한다. 7.4남북공동성명이나 기본합의서의 예가 그러하다. 이명박 정부도 초기엔 북한이 비핵화를 추진하면 경제적인 점진성을 가하겠다, 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비핵화, 탈 핵화에 따라 대북정책을 진행하겠다는 상호성을 내걸었다는 것이 전 정부와의 차이점이기 때문에 결국 더 이상의 전진을 이끌어내진 않았다. 대 : 독일에서 서독이 동독을 흡수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인데 이것과 햇볕정책과의 관계는 어떻게 보면 되나?
권 : 독일의 경우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교류를 시작했다고 보기는 힘든 것 같다. 냉전 체제의 붕괴 속에서 갑작스럽게 동독이 무너지면서 어쩔 수 없이 통합된 케이스라고 본다. 햇볕 정책과의 관계는 통합이론에 기능주의와 신기능주의와 연관지을 수 있다. 기능주의는 경제적 분야에서 결합력을 높여서 통합의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신기능주의는 사회문화적 영역에서 통합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통합을 추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박 : 우리가 북에 지원해준 것보다 서독이 동독에 지원해준 것이 훨씬 많았다. 통합이론 측에서 보면, 80, 90년대 대북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유럽의 통합이론을 배우고 와서 그것에 기반을 둔 정책을 세운 것이다. 권 선생님도 기능주의와 신기능주의에 대해서 언급했지만, 그것을 다시 말하자면 관료중심의 경제적 발전처럼 서로(서독과 동독) 간의 의존성을 높이자는 그런 의미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독일보다 서로 간의 정치적 합의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점이다. 다시 말하면 경제적 관계보다 정치적 관계를 뒤로 두는 문제점 때문에 통합이론이 진전되지 못한 것이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권 : 햇볕정책은 점진적인 교류협력 속에서 통합력을 높이고 상호의존성을 높여서 통합의 길로 가자는 거다. 박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에는 통합이론이 엄밀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김대중 정부는 기능주의였다, 노무현 정부는 신기능주의였다, 이렇게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두 정부의 대북정책에는 각각 기능주의와 신기능주의가 섞여있디 때문이다.
대 : 지금 북한은 김정은 체제가 된 상황이다. 여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으면 한다.
권 : 이런 이야기를 하기가 좀 부담스럽다. 젊은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을 할 때 ‘점쟁이 짓’을 한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사견으로 봐주면 좋겠다. 김정은 체제에 대해 말하기 전에 전제해야 할 조건이 하나 있다. 사회주의 국가는 당?국가체제이다. 당이 겸직을 통해 국가를 운영하는 것이 사회주의 체제의 기본이다. 그런데 북한은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국방위원회가 등장하면서 비상체제로 운영되었다. 이는 국가운영에 있어서 당이 뒤로 물러서고 군이 전면에 나서 비상 통치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2010년, 3차 당대표자회의를 기점으로 군이 다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비어있던 당 최고지도부와 당비서국의 자리들을 다시 채워서 당의 국가에 대한 장악력을 다시 강화하고 있다.
경제 분야에 있어서는 의견이 여러 가지로 갈린다. 배급망을 통해서는 배급이 잘 안 되지 않아 인민들 전부 굶어 죽기 직전인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시장을 통해서 먹고 살 사람은 다 먹고산다. 북한도 양극화가 진행이 되고 있어 잘 사는 10%의 사람은 잘 먹고 산다. 80% 정도는 근근이 시장에서 장사를 통해 먹고 산다. 그리고 나머지 10%의 빈민들이 존재한다.
박 : 이제 북한도 점차 중국식 경제활동을 모델로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북한은 공급을 해주는 대신 사적인 경제 소유를 인정하지 않는 제도를 채택해왔다. 그런데 정부에서 공급을 충분히 해줄 수가 없으니 정부의 배급이나 공급 등 기본적인 것을 줄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나머지의 수급은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으로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권 : 군수, 철도, 철강과 같은 국가 기간산업은 자재 공급도 국가가 해주고 배급도 해준다. 그러나 지방이나 다른 곳의 경우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2002년 7.1 조치 이후 북한은 종합시장을 합법화했다. 북한당국은 시장관리위원회를 통해 시장세를 걷는다. 시장세를 통해 시장을 통제하려고 했지만, 장세가 잘 걷히지 않고, 시장에 판매 할 수 없는 중국 제품, 한국제품을 밀수하여 파는 사람이 생기는 등 통제를 점차 벗어나는 부분들이 발생했다. 그러면서 ‘돈주’라는 ‘붉은 자본가’들이 북한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들 중에는 공장이나 목욕탕, 여관 등을 개인이 불법적으로 운영하거나, 인민위원회에 뇌물 혹은 비공식적 대여료를 제공하고 운영하기도 한다. 혹은 국가기간산업이 아닌 공장에 원료를 제공하거나 자본을 제공하는 형태로 불법적으로 공동지분을 나눠 운영하기도 한다. 그들은 국가 계획에 정해진 일정금액만을 납부하고 남는 이익은 지분만큼 서로 나누면서 부를 축적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두 가지 상반된 시작이 존재한다. 하나는 개혁을 강화하여 시장경제로 체제전환을 할 것이다, 라는 주장이다. 또 다른 하나는 아니다 시장을 현재와 같은 정도로 유지하면서 국가공급능력을 확대해서 기간산업 외의 ‘돈주’들이 장악하고 있는 영역을 다시 국가가 빼앗아 오는 방향으로 국가의 시장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할 것이다, 라는 주장이다.
대 : 화폐개혁을 한 것 또한 시장에 국가의 통제력을 올리려 한 것으로 봐도 무방한가?
권 : 인플레이션을 잡고 돈주들을 잡아서 국가재정을 확보하려고 한 측면에서 실패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왜냐하면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북한 돈을 달러나 위안으로 바꿔놓은 상태이고, 원래 돈주들은 북한 돈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화폐개혁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러한 상태에서 시장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피해를 많이 보았다. 그래서 2009년 화폐개혁 직후에 탈북자들이 급증한 것이다. 그리고 북한이 또 하려던 것이 국영상점에서 공급하는 상품의 가격을 현실화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 또한 공급의 부족 문제로 실패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화폐개혁은 실패했다고 보는 편이다. 그러나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서 시장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고 시장 활동을 위축시켰다는 효과의 측면에서 성공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대 : 그렇다면 김정은 체제에 우리가 대응해야하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권 : 김정은 체제가 개혁을 선택하든 독재의 강화를 선택하든 간에 우리는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한다. 김일성은 한국전쟁을 일으켰고 60년대, 70년대에는 무장공비도 보냈다. 그럼에도 박정희 정권은 7.4남북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미얀마에서 벌인 ‘아웅산 테러’나 ‘칼기폭파사건’과 같은 테러도 있었지만 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발표했다.
대 : 일각에서는 세 후보의 대북 정책이 대동소이하다고 보는 듯하다. 유권자들이 보아야할 대북정책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한다.
권 : 대북정책에 관해 세 후보가 기본적으로 대화를 다 이야기하고 있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 스스로 밝혔듯이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박근혜 후보는 신뢰를 강조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결과로부터 시작하겠다고 하였다. 이것은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피격과 같은 사건들 속에서 북한의 신뢰를 먼저 확인한 뒤 남북 대화를 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이명박 정부와의 차이점이라면 박근혜 후보 캠프에는 대화 주장파와 신뢰 주장파들의 상호 공존한다는 정도이다. 그래서 박근혜 후보 같은 경우는 아직 알 수가 없다.
박 : 박근혜 후보가 대화를 이야기하면서 하면서 신뢰를 이야기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신뢰뿐만 아니라 균형(balancing)과 연계(alignment)에 따라 대북정책을 진행하겠다고 입장을 표명했는데, 이것도 북한의 태도변화에 따라 정책을 수립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명박 정부가 이야기하는 상호성의 다른 표현이라고 본다. 그리고 북한 인권기구를 만들고 자유민주주의에 근거한 민족평화공동체를 수립하자고 내세운다. 그런데 이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북한에 일방적으로 강제하겠다는 의미로 이 입장을 고수할 경우 정치적인 갈등과 마찰이 예상된다. 그리고 북 핵 얘기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가 없다.
권 : 이런 측면에서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의 경우 동시행동을 내세우고 있다. 여기서 동시행동이란 건 식량을 우리가 얼마 지원해주면 북한은 어떤 조치를 취하라는 식으로 동시에 전개되는 정책을 의미한다.
대 : 이제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을 평가 하는 순서인 것 같다. 어떻게 바라보는가?
권 : 이명박 정부의 5년은 한반도에 불신을 심어 분쟁 위험이 고조된 기간이었다. 경제협력도 축소되어 개성공단 이외의 협력은 더 이상 추진되지 못하였고 개성공단은 현상유지만 하고 있다.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이 발생하였고, 북한이 핵무기를 실험하였다. 다시 냉정시대로 돌아간 것 같다.
대 : 이명박 정부의 평가를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문재인과 안철수, 박근혜 후보의 대북정책이 갈릴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권 :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 둘의 차이점은 존재한다. 안철수 후보는 중소기업 등 국내의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북방경제 남북경제협력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대북경제협력을 말한다.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후보와 마찬가지로 경제를 강조하지만 남북경제연합 등의 경제공동체의 정치적 합의를 우선시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한 남북대화채널에서도 조금 차이가 있다. 이 둘은 대화채널을 조속히 복원하겠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안철수 후보 측은 장관급 회담을 개최하여 남북 간의 대화 채널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문재인 후보는 임기 첫해에 정상급 회담을 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안철수 후보 보다 높은 수준의 남북대화를 통해 대화채널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대 : 마지막으로 향후 대북정책에 관해 한마디씩 부탁드린다.
박 : 김영삼 정부를 이야기 할 때도 잠깐 언급했지만 통일의 3대 조건인 자주, 평화, 점진의 원칙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사과를 받아낸다던지 신뢰를 구축한다던지 이러한 과정도 아까 말했던 3가지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 것 같다. 새누리당이든 민주당이든 생각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북한의 인권 문제나 통일의 목표 의지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권 : 세 후보 모두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대한 반성적 지점 속에서 대북정책이 수정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립이 아닌 대화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라고 본다. 여기서 더 나아갔으면 하는 것은 이런 정책들이 남북한의 시민 또는 인민들을 위한 것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동북아 공동체의 평화를 위하고 한반도를 위한 게 아닐까한다.
대 : 두 분의 대북정책에 관한 토론으로 인해 많은 원우들이 좋은 배움의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참여해주신 두 분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