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우린 왜 이렇게 힘든가

2021-05-10     민지은 수습기자
▲영화「버닝」의 포스터 (출처=네이버 영화.)

지금의 청춘들은 자신들이 왜 힘든지, 누구의 탓인지 알지 못한다. 비난할 대상조차 사라진 후에 남는 것은 분노가 아닌 무기력함이다. 영화 ‘버닝’에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이 느끼는 감정에 주목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종수’는 문예창작학과를 나와 작가를 꿈꾸지만 무슨 글을 써야 할지, 이 길이 맞는지 막막하기만 하다. 기댈 부모도, 돈도 없는 그는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쁘다. 반면 종수의 어릴 적 친구인 ‘해미’는 마트 행사 모델 아르바이트를 하며 좁은 원룸에 살지만 아프리카로 여행을 갔다 올 정도로 삶에 적극적이다. 해미와 여행에서 친해진 ‘벤’은 둘과 다르게 경제적으로 여유로우며 별다른 목표 의식 없이 하루하루 즐기면서 산다. 해미를 대하는 모습만 보더라도 진지한 인간관계로 대하기보단 해미 특유의 티없음이 흥미로워서 함께 다니는 것처럼 느껴진다. 종수가 벤을 ‘개츠비’로 표현한 것처럼 그는 노력 없이도 부모님의 재산으로 안정적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선택받은 사람인 것이다.

영화는 관객들이 이해하기에는 조금은 버겁고 많은 상징적 요소들이 담겨있다. 하지만 영화를 본 모두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부분은 세 인물들이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으며 현실의 누군가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버닝’의 이창동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영화를 통해 ‘기성세대와 공존하는 젊은 청춘들이 느끼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종수와 해미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삶을, 벤은 기성세대를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속 종수와 해미의 삶은 벤에 비교하면 기구하기 짝이 없다. 젊음이 좋다지만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청춘에게 세상은 모든 것을 혼자서 해내야만 하는 냉혹한 현실일 뿐이다. 더 높은 학벌, 차별화된 스펙을 쌓느라 정신없이 달려왔지만 상향평준화된 기준 때문에 취업난에 시달린다. 목표를 향해 달리는 스스로가 뿌듯하고 만족스럽지만 매달 임대료를 받으며 편하게 사는 건물주가 부럽기도 하다. 가장 힘든 것은 노력해도 바뀌지 않을 것 같은 현실이다. 지금 당장 힘든 건 참을 수 있지만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현실은 암담하기만 하다. 

처음으로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세대가 지금의 20대~30대 초반인 Z세대라고 한다. 과거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그리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누구나 열심히 살면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돈을 모아 단란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평생 모아도 서울에 자기 소유의 집 한 채 사기 힘들 것 같은 월급을 받으며 형편이 나아지길 바라는 건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일부에서는 영화가 기성세대의 시선으로 그저 불쌍한 청년을 클리셰로 표현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존재한다. 하지만 청년들의 고달픈 삶 또한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만물이 푸르른 봄철’이라는 청춘의 본뜻과는 거리가 있는 청춘들의 삶은 섣불리 ‘청춘’이라 부르기도 조심스럽다.

우리 모두는 청년이고 청년일 것이며 청년이었을 것이다. ‘아프니깐 청춘’이라는 말로 청년들의 아픔을 정당화하기보다는 미래를 책임지고 꾸려나갈 청년들의 삶에 조금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