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니콜라스 케이지도 몰랐던 곳

2021-01-05     이태건 기자

흔히 작품을 ‘텍스트’라고 말하고자 하는 이유는 작 품의 열린 의미를 지향하기 위해서다. 한 작품의 해석이 고정불변한 정전으로서의 해석이 아니라 끊임없는 논쟁 과 투쟁의 무대로 구성해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고자 하 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저자’가 모르는 곳을 탐구하고 읽 어내는 시안은 저자의 의도대로 작품이 쓰이고 만들어질 수 없다는 관점이다. 본래 불온전한 언어라는 속성처럼, 언어를 문자로 표현하는 저자마저도 자신의 뜻을 통제할 수 없고 어쩌면 통제와 불능 어느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독자는 저자 가 통제하지 못한 곳, 의식하지 못한 곳, 미처 알지 못했던 곳을 발견해 역설함으로써 진정한 텍스트의 의미 생산과 해석을 실천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언어와 문자, 문학뿐만 아니라 영화에 서도 마찬가지다. 당시 감독이나 배우들이 인식하지 못 한 곳, 통제하지 못한 곳을 발견해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 고 다시 줄타기의 두 영역 가운데서 끊임없이 통제의 영 역으로 의미를 지연시키고 밀어내는 논쟁이 영화를 ‘텍 스트’로 보는 것이다. 이 칼럼의 제목처럼 니콜라스 케이 지가 영화 ‘패밀리맨’을 연기하면서 당시 그가 몰랐던 의 미를 새롭게 해석하고 영화가 은연시에 전하고 있는 맹렬 한 지시의 침묵을 읽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맹렬한 지 시의 침묵은 어쩌면 우리를 구성하고 호명하며 그렇게 살 도록 순응시키는 지배 구조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내 해체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영화 ‘패밀리 맨’ 에서 니콜라스 케이지가 몰랐던 곳은 어디인가.

  영화는 공항에서 잭(니콜라스 케이지)과 케이트(티아 레오니)의 이별 장면부터 시작한다. 잭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떠나지 말아달라는 케이트의 간절한 부탁을 뿌리치 고 런던행 비행기에 오른다. 시간이 지나 잭은 월스트리 트에서 ‘성공한 화이트맨’으로 지내지만, 우연한 사건으 로 인해 또 다른 세계, 케이트와 결혼한 ‘타이어 샐러리 맨’의 삶을 경험하게 되고 진정한 가족애를 깨닫게 되는 꽤 감동적인 영화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려지는 잭과 케이트를 통해 당시 개봉한 영화가 자기도 모르게 보여주 는 여성적, 남성적 모델을 읽어낼 수 있다.

  잭은 냉철한 능동적 주체로 가족의 앞날과 미래를 위 해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케 이트는 헌신적이지만 때론 그것이 지나치도록 소비적이 어서 잭에게 ‘감정적’으로만 호소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따라서 감정의 호소는 때론 불합리적이고, 얼굴을 찡그 리게 만드는데(특히 잭이 다시 월스트리트 직업을 구하고 호화로운 빌딩으로 이사가고자 케이트에게 말하는 장면 을 유심히 보라) 잭은 이런 케이트를 이성적으로 이해시 켜야 하는 주체로 상정되고 케이트는 이성적으로 이해를 받아야 하는 객체로 전락된다. 이 관계에서 케이트는 의 도치 않게 지속적으로 잭의 성공을 방해하는 존재가 되 면서 한없이 수동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이러한 두 인물 의 차이가 극명히 드러나는 장면은 둘의 성공을 각자 만 류하는 각기 다른 장면이다. 앞서 언급한 케이트가 월스 트리트로 돌아가려는 잭을 만류하는 장면과 잭이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와 파리로 떠나려는 케이트를 붙잡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케이트는 잭을 감정적으로 찡그리게 만류하지만, 후자의 장면에서 잭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 며 감동적이게 케이트를 만류한다. 이 둘의 같은 만류는 확연하고 선명하게 영화에서 달리 그려지며 따라서 영화 를 보는 관객에게 그 체감을 의도치 않게 압도한다. 그리 고 그 압도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 능력, 본질, 습성 등을 은밀히 주장한다. 니콜라스 케이지와 영화의 감독, 그리 고 모든 관계자들이 미처 몰랐던 곳은 바로 여기인 것이다.

▲영화「패밀리 맨」의 포스터 (출처=네이버 영화.)

 

  이 영화에는 더 많은 구조적 차이와 의미들이 잔류하 고 있다. 또한 ‘패밀리 맨’이라는 영화 제목이나 포스터 도 유심히 관찰해보자. 이렇게 아직까지 풀지 않은 날과 실, 의미의 생성을 이제 독자에게 맡기고 이 칼럼의 저자 인 ‘나’ 역시도 죽고자 한다. 끊임없이 유보되는 확정과 무한한 의미생성, 지연, 미룸을 독자들에게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