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근시(近視)의 비극

2020-10-12     이효상 수습기자
▲정호승 시집「슬픔이 기쁨에게」의 표지 (출처=교보문고.)


새벽 6시 30분. 집을 나선 시간, 공기는 적적했다. 집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잡아타고 가던 그 1시간의 시간도 내게는 소중했다. 버스 왼편의 뒤에서 3번째 칸, 그곳이 내 자리였다. 새벽 버스를 탔기에 언제나 비어 있던 그 자리. 그 자리에서 나는 도착할 때까지 웅크려 잠을 잤다.

언제나 낙관적이고 밝았던 나도 작년 한 해는 달랐다. 항상 비관적이었고, 엇나갔다. 스스로를 옥죄었으며, 감정을 억제했다. 힘들 줄 알면서 다시 도전한 것이었지만 정말 쉽지 않았다. 아쉬움은 항상 내 발목을 잡았고 외로움은 날 우울의 심연으로 끌어내렸다. 숱하게 받던 평가들, 나의 점수를 높이려 나는 말수도 줄였고 감정도 줄였다. 내 눈앞의 것들에만 매달렸으며,하루하루 나를 불태웠다. 문득, 포기를 울부짖던 때가 있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책상과 가방을 정리하다가 정호승의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를 발견했다. 목차를 훑었다. 「목숨과 안경」. 「목숨과 안경」이라니, 흥미로웠다. 홀린 듯 페이지를 펴 읽기 시작했다.

 

 

저린 가슴 태우며 재가 된 채로

내가 처음 죽고 싶다 말하였을 때

내 변사체가 안경 끼고 걸어서 왔다.

(중략)

가로수를 지나서 길을 가다가

금 간 안경알을 홀로 닦다가

오늘 내 변사체를 들여다보니

내 목숨은 외로운 근시(近視)이었다.

(후략)

정호승 시인의 「목숨과 안경」 中

 


너무 놀랐다. 아니, 놀랐다기보단 슬펐다. 어느새 이 시에 온전히 공감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새벽 버스의 창에 기대어 쪽잠을 자던 소년은 비로소 감정을 되찾았다. 앉은 자리에서 시를 되풀이하여 읽고 또 읽었다. 오랜만에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막혔던 말문이 트였다. 잠시 숨을 고르는 법을 깨우쳤다.

감정의 소중함을 배웠다. 이전에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일상적 감정의 소중함. 저녁을 먹고 친구들과 몰려가던 편의점 앞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공부를 마치고 친구들과 집에 갈 때 콧속으로 들이치던 뿌듯한 밤공기. 하나하나 모두 그리웠다. 내 감정에는 무관심한 채 눈앞의 사건들 속에서 하루하루를 소비하던 전과는 다르게, 나는 나의 특별한 감정들을 소중히 여기기 시작했다. 힘들었던 도전을 만족스럽게 마쳤다. 끝난 후부터 지금까지, 원래의 나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감정을 가렸던 암막 커튼을 완전히 걷어냈고 우울을 멀리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집 밖 활동이 제한됐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행복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우울과 다시 대면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라봤던 목표를 이뤘지만,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다시 눈앞의 것들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다시 감정을 회피했다. 즐겁기만 할 줄 알았는데. 거의 다 그대로였다.

한 번쯤은 눈앞에 놓인 일들에 매여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눈앞에 놓인 일이 무엇이든 그것의 경중과는 관련이 없다. 하루하루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면서. 이것만 끝내면, 해내면, 만족할 만큼 성과를 내면. 그저 행복하리라 믿었던. 한 번쯤은 그런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근시(近視)가 됐나? 우리는 항상 눈앞에 놓인 것들만 본다. 성취감은 잠깐이다. 눈을 뜨면 다시 매달릴 다른 일들이 있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지 뭐’. 그것들은 나중에 눈앞의 일로 돌아오고, 우리는 계속 눈앞의 일들만 보게 된다. 이후가 어찌되든 지금의 나와는 상관이 없다. 우리는 눈앞의 일의 해결이 제일 급하다. 내가 그랬듯, 내가 그렇듯. 혹은, 우리 모두가 그렇듯.

죽자고 매달렸던 것을 성취한 뒤, 씁쓸한 허무가 밀려오는 것은 왜인가. 우리는 모두 ‘외로운 근시(近視)’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감정을 배제하고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 얽매이는 삶. ‘외로운 근시(近視)’의 삶은 나를 파괴한다.

배제된 감정을 회복하라. 성취의 만족을 보장하라. 허무의 근원을 찾아 모두 근시(近視)로부터의 해방을 꾀하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