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물려고

수습기자 6개월을 뛰면서

2014-04-29     김형균

나는 忠淸道(충청도) 出身(출신). 淸風明月(청풍명월)의 아름다운 고장 태생을 즐겨 자랑하는 修習記者(수습기자)-즉 나의 센스는 퍽 무디기도 했다.

社則(사칙)에 의해 6個月(6개월)의 修習(수습)기간을 갖는다 해서 그런줄만 알았지(허긴 몰랐으면 어쩌련마는) 뜨겁고 짠맛은 생각해지질 않은 것이다.

“출입처 돌았냐” “돌았어유”

모르는 사람을 위해 한마디 한다면 出入處(출입처)란 각 取材記者(취재기자)가 교내의 각부서를 담당하여 取材(취재) 및 연락을 맡아보는 것으로 入社(입사)의 첫단계에서 꽤나 힘든 고비를 이룬다.

우선 나라는 놈이 약삭빠르고 타산적이 못돼서-촌에서 올라올 때 큼직한 이불보따리를 둘러메고 2시간 동안 寄宿舍(기숙사)를 찾아 헤맸으며, 70mm영화를 보고싶어 했다-선배기자들의 곱지못한 눈총을 받고도 ‘應無所住(응무소주)하여 而生起心(이생기심)하라’라는 文句(문구)하난 들은바 있어 제맘대로 했으니 짐작컨대 그 간의 편력은 알만도 하다.

東奔西走(동분서주)한다는 말이 꼭 필요한 만큼 기사하나에 숨찬 뜀박질과 전화벨이 울리기 몇번. A部(부)에서 B處(처)로 전전하다보면 언젠지 모르게 수업은 시작됐고 강의실 열쇠구멍은 곧잘 入室(입실)의 용기를 꺾어 버린다. 여기서 나는 科友(과우)들에게 소외감을 느꼈다.

물어온 기사는 未決(미결)함에서 몇번이고 빠꾸당하다가 악착같이 써내서야 그럴듯하다고 인정을 받는다. 그러다가 마음한번 느긋해지기 시작하면 오뉴월의 찬서리도 아랑곳없이 태만해진다.

내 편한대로 생각하기를 大學新聞社(대학신문사)하면 利害(이해)관계가 그리 깊지않은 文學會(문학회) 비슷한 아기자기한곳인줄 알았지 출근부에 도장찍고 始末書(시말서)쓰라고 하는데 일줄이야. 누군가는 “사랑한 죄밖에는”이라고 자기 마음을 쥐어짰지만 기실 나는 생각못한 죄밖에는….

入社後(입사후) 표나게 늘어난 것이 주량이다. 처음의 입사 申告式(신고식)은 명보극장뒤 어느 술집에서 가졌는데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본관은 尙山(상산) 金(김)가, 충청도 양반……아직 장가 못갔음…지랄의 거두…”

거기까진 좋았는데 양반도 알콜에는 못당하는지 뒤엎은 술주전자가 옆자리 선배를 흠뻑 뒤엎고 벗어버리는 성질은 있었던지 시계는 벗어 술집주고 윗도리는 팽개치고, 그리곤 느긋한 마음이 된다.

한번더 말하자면 내 별호는 비실이다. 육사생도처럼 꿋꿋하게 法(법)학도마냥 철두철미하게 누구마냥 대단한 모습으로-그렇게 하지 못해서 비실비실 걷고, 어깨를 꾸부리고, 구두닦이는 얼마를 주나 모르고, 가끔 머리를 깎고는 안절부절하는 그런 가운데 웃을줄도 아는 피해망상가 비실이다.

민완기자 타입으로는 空(공)이지만 空卽是色(공즉시색)이라나. 그런대로 合理化(합리화)할줄도 아는 낙서장에는 술이취한 독백이 있다.

‘위선적인 극적상황의 가장아래 꾸며지는 얘기가 주위엔 혼하고 언제부턴지 비범의 히어로즘에 익숙해지고 또한 가소로운 얘기가 신경을 흐뭇하게 해주는 획기적이고 기발난 언행이 타당화 합리화된 것도 같다.’-유치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제법 기사손질에 응석도 부릴줄 알고 이모양 저모양으로 신문이 뭔지도 어슴프레 알게 되니 늦은 밤 동악의 언덕에서 휘황한 시내의 불빛도 감미로웁게 느껴지고 인쇄가 끝난후 공장옆 순두부집은 곧잘 입맛이 돈다.

신문편집의 전문적인 직업이 처음의 나에게는 생소했고, 그러면서 뛰어야 하면 생기는 실수는 비일비재, 여기서 생기는 고충은 심적으로 상당한 부담감을 준것도 사실이다. 나는 좀더 어른스러워져야 했고 內部(내부)를 숨겨야 할 필요성도 느끼는 비실이가 된지도 모른다. 일면으로 나는 그만큼 성장한 것이라면 아하? 修習(수습)기간이 끝났다지만 비실이는 그 무엇을 알았는가.